다들 AI 얘기만 하는데, 정작 뭘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회사에서 “이제는 AI 시대”라는 말이 안 나오는 날이 드물다. 회의 때마다, 사내 공지마다 AI를 적극 활용하라는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그래서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라는 거지”라는 물음에 명확히 답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은 있는데, 그 조급함을 풀어줄 구체적인 방향은 잘 안 보인다.
이게 그냥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2026년 6월 발표한 ‘업무동향지표(Work Trend Index)’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78%가 “AI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것”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10개국 중 브라질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자, 글로벌 평균(65%)보다 13%포인트나 높은 결과였다. 근데 정작 “경영진이 명확한 AI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글로벌 평균(2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AI를 활용한 업무 혁신이 실제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답한 비율은 7%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았다.
MS는 이 간극을 “전환의 역설(Transformation Paradox)”이라고 불렀다. 직원들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는데, 조직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내 응답자의 43%는 “기존 방식대로 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답했는데, 이건 변화가 싫어서라기보다 변화했을 때 뭐가 좋아지는지 확신이 없어서에 가까워 보인다.
이 ‘역설’이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쪽에서도 같은 패턴을 다른 각도에서 확인한 조사가 있었다. 2026년 6월, Fortune에 사샤 로겔버그 기자가 쓴 기사가 있다. 근거로 든 자료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2026년 “Global AI at Work” 리포트였는데, 전 세계 프론트라인 직원 거의 1만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응답자의 42%가 AI를 꾸준히 활용해서 일주일에 하루치, 그러니까 8시간 정도를 아꼈다고 답했다. 언뜻 보면 엄청난 생산성 향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중 66%는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에 대해 회사로부터 거의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절반은 그 아낀 시간을 더 전략적인 업무에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BCG의 피플앤오거니제이션 부문 글로벌 리더인 데이비드 마틴은 이 현상의 원인을 아주 인간적인 실패로 설명했다. 경영진이 AI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모호함이 직원들의 불안을 키우고, 결국 AI를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쓸지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했다.
· 프론트라인 직원 약 1만 2천 명 조사
· 42%가 AI로 주당 8시간(하루치) 절약했다고 응답
· 66%는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회사의 안내를 거의 받지 못함
· 절반은 그 시간을 전략적 업무에 쓰지 못하고 있다고 답함
기사에서 더 눈에 띄었던 건 “토큰맥싱(tokenmaxxing)”이라는 표현이었다. 일부 회사는 AI 활용을 독려한다면서 실제로는 사용량 자체를 실적처럼 관리했다. 아마존 직원들은 AI 활용 지표를 맞추기 위해 챗봇으로 별 의미 없는 작업을 돌리기도 했고, 메타는 아예 사내 AI 이용 순위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아마존은 최근 이 내부 추적 자체를 없앴는데, 한 임원이 직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냥 AI를 쓰기 위해서 AI를 쓰지는 말아주세요.”
“적극 활용하세요”라는 말이 사실은 아무 말도 아니었던 셈이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적극 활용하세요”라는 말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사에서 똑같이 반복돼 왔을지 새삼 와닿았다. 언뜻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방향도 제시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문장이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지, 그걸 어떻게 평가할 건지가 다 빠진 채로 던져지니까. BCG 마틴의 말대로라면, 그 모호함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이게 “회사가 다 잘못했다”는 얘기로 단순하게 정리되지는 않는 것 같다. AI라는 게 아직 다들 처음 다뤄보는 도구고, 경영진 입장에서도 정확히 뭐라고 지침을 내려야 할지 확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방향 없이 “많이 쓰라”고만 하면 직원들은 결국 사용량 자체를 목표로 삼게 되고, 그건 원래 기대했던 생산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결국 많은 직장인이 챗봇 창을 켜놓고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은, 뭔가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방향 없이 주어진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불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조사 결과들이 보여주는 것 같다.
참고 : 민나리. (2026, June 16). 직장인 10명 중 8명 AI 포모… “회사는 대책도 보상도 없어”.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economy/IT/2026/06/16/20260616029004
Rogelberg, S. (2026, June 5). AI productivity gains are real but so is bad management: “Leaders are really struggling to articulate what the vision and strategy is.” Fortune. https://fortune.com/2026/06/05/ai-productivity-paradox-bad-leadership-tokenmaxxing-big-tech-boston-consulting-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