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 요즘도 유효할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장 잔고가 넉넉해야 스트레스도 줄고 선택지도 넓어진다는 논리다. 둘 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둘 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논쟁에서 자주 빠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얼마를 버느냐, 얼마를 쓰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에 쓰느냐”도 아니고, “누구에게 맞게 쓰느냐”의 문제다.
7만 6천 건의 은행 거래가 알려준 것
2016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산드라 마츠 연구팀이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7만 6천 건이 넘는 실제 은행 거래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과 맞는 물건에 돈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었고, 그 소비가 자신의 성격과 잘 맞을수록 삶의 만족도도 더 높았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이 ‘성격과의 적합도’가 총소득이나 총지출 규모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쓰는지보다 그 돈을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맞게 쓰는지가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어서 후속 실험도 진행했다.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억지로 바(bar)에서 돈을 쓰게 하자 더 행복해했고,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억지로 서점에서 돈을 쓰게 하자 오히려 더 행복해했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이 서점에서, 내향적인 사람이 바에서 소비하면 만족도가 떨어졌다. 성격에 맞는 소비가 그냥 상관관계가 아니라 실제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실험이었다.
· 7만 6천여 건의 실제 은행 거래 기록 분석
· 성격과 소비의 적합도가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 상승
· 이 효과는 총소득·총지출 규모보다 더 컸음
· 후속 실험: 성격에 맞지 않는 곳에서 억지로 소비하면 오히려 만족도 하락
2026년 심리학 칼럼니스트 맥스 알버하스키도 이 연구를 인용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정리한 다섯 가지 행복 소비 전략 중 마지막이 바로 ‘정체성에 맞는 소비’였다. 경험에 쓰기, 시간을 사기, 타인에게 쓰기, 마음의 짐을 더는 데 쓰기와 함께, 결국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것에 쓰는 소비가 가장 오래가는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쓰고 싶은 대로 다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이걸 “성격에 맞으면 뭘 사도 괜찮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기는 조심스럽다. 부채나 저축 여력을 고려하지 않고 성격에 맞다는 이유만으로 소비를 늘리면, 그 만족감은 오히려 장기적인 스트레스로 돌아올 수 있다. 또 ‘나에게 맞는 소비’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자신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알려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더 정확히는 그 돈이 자기 자신과 얼마나 맞닿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통장 잔고를 늘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그 돈이 실제로 나라는 사람과 얼마나 맞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잔고를 늘리는 것만큼이나 잘 챙겨보지 않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