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0년 상담사가 신입보다 못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AI 심리상담의 한계를 다뤘다. 공감은 해주는데 변화는 없고, 듣고 싶은 말만 해준다는 얘기였다. 그 글을 쓰면서 나는 암묵적으로 “그래도 인간 상담사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근데 최근에 읽은 심리학 잡지의 칼럼 하나가 그 생각을 완전히 뒤흔들어놨다.


경력 많은 심리상담사가 더 효과적일까? 연구는 “아니오”라고 한다

Psychology Today에 실린 글에서 임상·법정 심리학자 스티븐 다이아몬드 박사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2024년 학술지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를 포함해 여러 연구들이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거다.

경험이 많은 심리치료사가 더 나은 치료 결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쌓일수록 평균적으로 심리상담 효과가 조금씩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처음엔 “설마” 싶었다. 의사도, 변호사도, 요리사도 경력이 쌓이면 더 나아지는데, 상담사는 왜 거꾸로라는 걸까.

프로이트의 소파

심리상담 효과를 결정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이유는 이거다. 심리치료의 성패는 특정 기법이나 이론적 접근법보다,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는 것.

실존치료의 대가 어빈 얄롬이 말한 것처럼 “중요한 건 관계”라는 거다. CBT든 정신분석이든 인지행동치료든, 같은 접근법을 써도 어떤 상담사는 효과적이고 어떤 상담사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훈련으로만 길러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타고난 측면이 강하다는 거다. 처음부터 사람을 깊이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신입 때도 이미 효과적일 수 있고, 반대로 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한계가 있다.

심리학과에서 공부할 때는 사실 이런 내용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학부 과정은 대부분 통계 분석과 이론 암기로 채워져 있었다. 상담사의 효과가 경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계의 질이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자격증을 따고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상담사가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게 상식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이 연구 결과가 더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방식, 즉 지식을 쌓고 경험을 축적하면 나아진다는 믿음이 상담 분야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왜 경력이 쌓일수록 심리상담 효과가 떨어질까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더 제시한다.

하나는 성격 유형의 문제다. 심리치료는 전통적으로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외향적인 상담사의 경우, 내담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이 본래 약점인 영역이라, 경력이 쌓여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기 어렵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번아웃이다. 매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듣는 일은 소진이 빠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치료 관계의 질이 떨어지고, 결국 효과도 줄어든다. 경력이 쌓인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이 소진을 버텨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담 장면

AI 심리상담과 다시 비교해보면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앞 글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AI 상담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상담사는 공감하면서도 틀린 부분을 건드리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썼는데, 그게 모든 인간 상담사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닐 수 있다는 거다.

경력 20년의 번아웃 상담사와, 타고난 공감 능력을 가진 신입 상담사 중 누가 더 나을까. 연구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AI는 번아웃이 없다. 피곤하지 않고, 소진되지 않고, 매번 같은 에너지로 반응한다. 그 점에서는 인간 상담사보다 안정적이다. 하지만 AI는 타고난 공감 능력이 있을 수 없고, 진짜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결국 둘 다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다.

경력과 공부는 그렇다면 의미가 없는 걸까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럼 상담사가 열심히 공부하고 경력을 쌓는 게 다 의미 없는 건가?”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연구 하나로 그런 결론을 내리기엔 너무 성급하다. 다른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건, 단순히 시간이 쌓인다고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내담자와 수천 시간을 함께한다고 해서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심리상담 효과가 안정적으로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여러 개 있다.

그 대안으로 심리치료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개념이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이다. 단순히 경험을 쌓는 것과 달리, 의도적 연습은 자신의 임상적 약점과 한계를 직시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특정 기술을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을 말한다. 실제로 효과적인 상담사들은 평균적인 상담사에 비해 의도적 연습에 두 배 반 이상의 시간을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력과 공부 자체가 의미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쌓느냐가 중요하다는 거다. 자기 성과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불편한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훈련하는 상담사는 경력이 쌓일수록 실제로 나아진다. 반면 그냥 연차만 채우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피아노를 10년 쳤다고 해서 저절로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이 틀리는 부분을 찾아내고, 느리게 반복하고, 불편하더라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연습을 한 사람이 나아진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오래 했느냐보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성장해왔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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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mond, S. A. (2026, july). Do seasoned therapists become less effective over time?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evil-deeds/201905/do-seasoned-therapists-become-less-effective-over-time

Goldberg, S. B., Babins-Wagner, R., Rousmaniere, T., Berzins, S., Hoyt, W. T., Whipple, J. L., Miller, S. D., & Wampold, B. E. (2016). Creating a climate for therapist improvement. Psychotherapy, 53(3), 367–375. https://doi.org/10.1037/pst000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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