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그램 실험, 사실 우리가 알던 그 얘기가 아니었다

사회심리학 시간에 배운 건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키워드였다

심리학 학부 시절, 사회심리학 수업에서 밀그램 실험을 배웠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전이라 디테일까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핵심 키워드는 또렷하게 남아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

교수님은 이 실험의 한계점도 같이 짚어주셨다. 실험 절차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문화권마다 복종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결국 시험에 적었던 결론은 단순했다. 권력이나 권위자의 지시가 있으면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 문장 하나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학부 수업이었으니 원 논문을 찾아본 것도 아니고, 이후에 나온 반복 실험들을 뒤져본 것도 아니었다. 교수님이 나눠준 슬라이드 몇 장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실험실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실행의 디테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최근에 이게 그렇게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학 강의실에서 심리학 개론 시험 준비하는 학생, 밀그램 실험
권위에 대한 복종. 그 키워드 하나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밀그램 실험 원본 녹음 136개를 다시 들어본 연구가 있다

임상법의심리학자 조니 존스턴 박사가 Psychology Today에 소개한 연구가 있다. 데이비드 카포시와 데이비드 슈메기라는 연구자들이 예일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밀그램 실험의 원본 녹음 136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참가자들이 “이건 과학 실험이니까”라는 믿음으로 복종했다면, 실험 절차도 끝까지 지켰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절차는 다섯 단계였다. 문제를 읽고, 답을 확인하고, 전압을 알리고, 충격을 가하고, 정답을 다시 읽어주는 순서였다. 그런데 녹음을 다 들어본 결과, 이 다섯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지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체 충격 중 거의 절반에서 절차 중 하나 이상이 어긋나 있었다. 가장 흔했던 위반은 이거였다. 옆방에서 비명이 들리는데도 그 위로 다음 문제를 그냥 읽어버리는 것. 그러면 학습자는 문제를 들을 수도, 답할 수도 없으니 다음 충격을 피할 방법이 없어진다. 실험은 어느 순간부터 학습자를 돕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겨냥한 도구로 뒤집혀 있었다. 유일하게 아무도 건너뛰지 않은 단계는 딱 하나, 레버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연구 핵심 포인트 · 136개 원본 녹음 재분석, 5단계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참가자는 0명 · 전체 행동의 약 50%에서 절차 위반이 발생 (가장 흔한 위반: 비명 위로 다음 문제 읽기) · 실험자는 “계속하세요”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까지 4단계 압박 멘트를 반복하면서도, 절차가 무너지는 것에는 침묵했다 ·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오히려 절차를 더 철저히 지켰다 (위반율 약 30%, 복종자는 약 50%)
연구진은 이 조합을 “합법적 폭력에서 불법적 폭력으로의 전환”이라고 불렀다. 실험은 명확한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절차가 무너지고 실험자가 침묵하는 사이 그 목적은 서서히 사라졌다. 남은 건 회색 가운을 입은 사람이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하는 상황뿐이었다는 거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벡과 동료들의 후속 연구에 따르면, 끝까지 복종한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냉정함이나 잔인함이 아니라 우호성과 성실성이었다. 좋은 참가자가 되고 싶어 했고, 권위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저항한 사람들은 도덕적 추론 능력과 사회적 지능이 더 높은 편이었다. “이게 아직도 말이 되나?”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오래된 테이프, 밀그램 실험 원본 녹음 재분석
유일하게 아무도 건너뛰지 않은 단계는 딱 하나, 레버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시험 답안지에 썼던 그 한 문장이 이렇게 복잡한 얘기였다니

이 연구를 읽고 나니 그 시험 답안지에 썼던 문장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3분의 2가 복종했다”는 한 줄로 요약하기엔, 실제로는 절차가 무너지고 실험자가 침묵하고 참가자가 서서히 다른 상황에 빠져드는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저항한 사람들이 딱히 더 용감하거나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원래 정해진 목적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새로웠다.

다만 이 재해석이 밀그램 실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정설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원본 녹음을 다시 듣고 코딩하는 작업 자체가 연구자의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작업이고, 60년 넘은 이 실험을 둘러싼 논쟁은 이번 연구로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적어도 “권위자가 시키면 다 한다”는 단순한 설명보다는, “절차가 무너지는 걸 눈치채고도 계속 물어볼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더 핵심에 가깝다는 인상은 남는다.


우호적이고 성실한 사람이 오히려 복종에 취약하다는 부분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도 정리가 잘 안 된다.

참고 : Johnston, J. E. (2026, March 31). Why ordinary people do terrible things.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human-equation/202603/why-ordinary-people-do-terrible-thing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