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몽어스라는 게임이 있다. 우주선 안에 숨어든 괴물, 임포스터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마피아 게임을 PC로 옮긴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코로나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한국에서도 꽤 많이 했다.
그 게임을 하면서 임포스터라는 단어가 귀에 익었는데, 나중에 심리학 공부를 하다가 같은 단어를 다시 만났다. 임포스터 증후군. 한국에서는 흔히 가면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증상이다.
알고 보니 원래 이름이 임포스터 증후군(Impostor Syndrome)이었다. 게임 속 임포스터처럼, 자신이 집단 안에 실제로 속하지 않는 가짜라는 느낌.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심리학에서 이 감각에 붙인 이름이 바로 그거였다.
회사에서 발표를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든 적 있는가.
“나만 모르는 게 있는 것 같다. 다들 잘 아는 것 같은데, 나만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들키겠지.”
예전에 가면증후군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솔직히 꽤 공감했다. 주변에 다들 뭔가 더 알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따라가기 바쁜 것 같고 나만 부족한 것 같았다. 그게 내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최근에 읽은 글 하나가 그 생각을 뒤집어놨다. 가면증후군은 애초에 증후군이 아니라는 거다.
가면증후군, 처음부터 ‘증후군’이 아니었다
1978년, 심리학자 폴린 클란스와 수잔 임스가 이 개념을 처음 학계에 소개했다. 그런데 그들이 붙인 이름은 증후군(syndrome)이 아니었다. 현상(phenomenon)이었다.
이 차이가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크다. 현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구하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반면 증후군은 임상적 개입이 필요한 진단 가능한 상태를 암시한다. ‘증후군’이 붙는 순간 이걸 경험하는 사람은 뭔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가면증후군을 경험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임상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 감각은 상황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가면증후군, 성장이 원래 불편한 거다
Psychology Today에 이 주제를 다룬 리더십 심리학자 미라 브란쿠 박사는 흥미로운 역설을 지적한다. 학력이 높고 전문성이 깊을수록 가면증후군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의사, 연구자, 교수, 고위 변호사처럼 끊임없이 더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 기준은 계속 높아지고, 복잡성은 멈추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들까.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들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근데 그게 병이 아니라는 거다. 그게 성장이 실제로 느껴지는 방식이라는 거다.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이 감각을 꽤 자주 느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어떤 맥락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대화하는데, 나만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 그때는 그게 내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냥 새로운 걸 배우고 있던 거였을 수 있다.
전문가에서 리더로 넘어가는 순간이 특히 위험하다
브란쿠 박사가 특히 강조하는 지점이 있다. 기술적 전문가가 리더십 역할로 이동할 때 가면증후군 경험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리더십은 그 자체로 전문 분야다. 사람을 이끄는 것, 전략을 세우는 것, 자원 배분, 갈등 관리, 변화 관리. 이 모든 게 따로 배워야 하는 기술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기술 분야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리더로 올라간다. 아무도 “지금부터 완전히 다른 분야를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이 생긴다. 한 분야에서 가장 훈련받고 뛰어난 사람들이, 리더 자리에서 가장 높은 가면증후군을 경험한다. 자신이 이미 전문가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그냥 새로운 분야를 시작한 거다.
그렇다면 진짜 가면증후군은 언제 적용되는 걸까
그렇다고 모든 가면증후군 경험이 다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브란쿠 박사는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성장과 연결된 자기 의심 특정 상황에서 나타나고, 역량이 쌓이면서 달라지는 것. 지적 겸손함에 가깝다. 건강한 신호다.
만성적인 부정적 자기 인식 삶의 여러 영역에 걸쳐 지속되고,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성공의 증거가 쌓여도 변하지 않는 것.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이름표를 붙이기 전에
가면증후군이라는 말이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이 감각을 느끼는 순간 스스로에게 레이블을 붙이게 된다. “나 가면증후군이야.” 그 순간 자신을 고쳐야 할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다. 근데 그 감각이 실제로는 성장 중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신호. 아직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인식하는 지적 정직함. 매슬로우 피라미드가 실제로 매슬로우가 그린 게 아니었던 것처럼, 가면증후군도 처음부터 증후군이 아니었다. 이름이 붙여지고 퍼지는 과정에서 원래 의미가 달라진 거다. 그러니까 그 불편한 감각이 찾아왔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게 먼저일 수 있다. 나 지금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참고문헌
Brancu, M. (2026, July 2). ‘Imposter Syndrome’ Is Not a Syndrome.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a-new-look-at-womens-leadership/202607/imposter-syndrome-is-not-a-syndrome
Clance, P. R., & Imes, S. A. (1978). The imposter phenomenon in high achieving women: Dynamics and therapeutic intervention. Psychotherapy: Theory, Research & Practice, 15(3), 241–247.
Kark, R., Meister, A., & Peters, K. (2021). Leadership imposterism. Journal of Management,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