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몰림 현상, 알고 보니 능력이 아니라 이것 때문이었다

말년 휴가 복귀하고 전역 전날 불려갔다

군대 이야기는 평생간다고 하지만 특히 이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말년 휴가를 나갔다가 부대로 복귀한 날이었다. 이제 마지막 밤만 자고 나가면 끝이었는데, 간부님이 다가오더니 “딱 하나만 도와달라”고 했다.

정확히 뭘 만드는 작업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대략 여러 장으로 나눠 인쇄된 지도를 하나로 이어 붙여서 큰 지도 한 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조각난 종이들의 경계선을 맞추고, 삐뚤어지지 않게 붙이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왜 항상 나였을까.

그날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내 후임 중에 좀 어눌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식으로 불려가서 뭔가 부탁받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근무시간이든 주말이든 필요하면 불려갔는데, 그 친구는 상대적으로 그런 일에서 자유로웠다.

당시엔 그냥 “내가 좀 더 쓸모 있어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 넘겼다. 지나고 보니 이게 꼭 좋은 신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업무 몰림 현상을 겪으며 야근하는 직장인의 어두운 사무실 책상
다들 잠든 시간에도 불려서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관리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걸 증명한 연구가 있었다

코넬대학교 케이틀린 울리(Kaitlin Woolley) 교수와 노스이스턴대학교 배상아(Sangah Bae) 교수가 2026년 저널 Organization Science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4,300명이 넘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여러 개의 실험을 진행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관리자들은 일 자체를 즐기고 의미를 느낀다고 판단되는, 이른바 “내재적으로 동기부여된” 직원에게 부가적인 업무를 더 몰아주는 경향이 뚜렷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관리자들에게 본인이 관리하는 두 명의 부하 직원에 대해 설문에 답하게 했다. 그 직원이 업무를 흥미로워하는지, 즐거워하는지, 관리자 본인이 그 직원의 성공을 얼마나 바라는지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서류 정리나 사내 행사 기획, 위원회 참여처럼 원래 업무 범위 밖의 일을 배정하게 했더니, 나이·성별·경력·성과를 다 통제한 상태에서도 관리자의 55%가 더 동기부여된 것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그 일을 맡겼다.

두 번째 실험은 좀 더 실험실다운 구조였다. 100명을 모아 세 명씩 묶고, 한 명은 관리자, 두 명은 직원 역할을 맡겼다. 직원 두 명은 8분 동안 데이터 입력 작업을 하고 가장 잘한 사람이 5달러를 받는 구조였는데, 관리자는 이 8분 중간에 추가 업무 하나를 둘 중 한 명에게 배정해야 했다. 그 추가 업무를 맡으면 본업에 쓸 시간이 줄어들어서 보너스를 받을 확률이 낮아지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관리자의 74%가 내재적 동기가 더 높다고 판단한 직원에게 그 일을 맡겼고, 결과적으로 그 직원들 중 실제로 보너스를 받은 사람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연구 핵심 수치
· 관리자 55% — 통제 변수와 무관하게 더 동기부여된 직원에게 부가 업무 배정
· 관리자 74% — 보너스가 걸린 상황에서도 같은 직원에게 업무 배정
· 예상 만족도 하락 0.2점 vs 실제 하락 1.0점 (약 5배 차이)

연구진은 이런 현상을 “동기 단순화(motive oversimplification)”라고 불렀다. 관리자들이 “이 사람은 본업을 즐기니까 추가 업무도 즐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오류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따로 있었는데, 관리자들은 추가 업무가 그 직원의 만족도를 0.2점 정도만 떨어뜨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그 직원들이 보고한 만족도 하락폭은 1점, 그러니까 예상의 다섯 배였다는 점이다.

회의 후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직장인, 업무 몰림 현상
관리자는 나쁜 뜻이 없었다. 그냥 제일 만만한 사람에게 손이 갔을 뿐

군대 마지막 날이 나쁜 기억은 아니지만

이 연구를 읽으면서 그 지도 만들던 날이 다시 떠올랐다. 군대라는 조직과 일반 회사 조직을 완전히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는 건 안다. 상하관계도 다르고, “동기부여”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군대는 좀 다른 맥락이니까. 그래도 구조적으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 사람은 시키면 그래도 군말 없이 해낸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게 제일 안전한 선택이다. 실패할 확률이 낮으니까. 나도 그때는 그게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믿음직한가 보다” 하고 약간 우쭐했던 기억도 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일이 계속 쌓이면, 정작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은 점점 지친다는 거다. 연구진도 관리자들이 악의를 갖고 이러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갑자기 일이 생겼을 때 검증되지 않은 사람보다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먼저 손이 가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그 반응이 쌓이고 쌓이면 정작 제일 열심히 하던 사람이 제일 먼저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게 이 연구가 하려는 말인 것 같다.
회사에서 이런 상황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연구진은 관리자들이 추가 업무를 누구에게 얼마나 배정했는지 기록해두는 대시보드 같은 걸 제안하기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걸 다 챙길 여유가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문득 그때 그 후임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 친구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고.

참고문헌

Bae, S., & Woolley, K. (2026). Managers allocate additional tasks to intrinsically motivated employees: Exploring mechanisms, consequences, and solutions. Organization Science, 37(3), 1145–1164. https://doi.org/10.1287/orsc.2023.18332 Contreras, C. (2026, March 18). Motivated employees get tasked with more work, study finds. Northeastern Global News. https://news.northeastern.edu/2026/03/18/intrinsic-motivation-at-work-burnout-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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