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심리상담 위험성 — 완벽하게 공감해주는 AI, 그래서 더 위험하다

AI 심리상담 챗봇과 대화하는 사람 스마트폰 화면
무한 긍정해주는 AI상담은 처음엔 편하다. 그러나 그게 문제다.

주식이 반토막 난 날, 나는 AI 심리상담을 받아봤다. 가족한테 말하자니 걱정시킬 것 같고, 친구한테 말하자니 “그러니까 주식은 왜 해”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제미나이를 켰다. 현재 상황과 우울감을 털어놨더니 “숫자는 당신의 존귀함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근데 창을 닫고 나서 뭔가 허전했다. 통장 잔고는 그대로고, 내가 왜 그 종목을 미리 팔지 않았는지 후회도 그대로였다. 공허한 말로만 느껴져서 결국 껐다.

하지만 나와 달리 이런 AI 상담에서 위로를 얻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AI 심리상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쓰고 있다

미국심리학회(APA)가 면허 심리학자 1,2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7%가 “환자 중 AI 챗봇 사용 경험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고 답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이미 이 얘기를 환자에게서 듣고 있다는 거다.

용도도 다양했다. 자가진단에 쓴다는 환자를 본 심리학자가 39%. 아예 정신건강 전문가처럼 AI를 쓴다는 경우도 35%였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진짜 상담 대용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는 것이 APA의 뉴스 내용이었다.


미국 얘기라서 다를 거라고? 한국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이 조사는 미국 얘기다. 미국은 직장인이 정기적으로 치료사를 만나는 문화가 있다. “AI를 보조로 쓴다”는 게 이미 전문 상담을 받으면서 추가로 쓰는 맥락이다.

한국은 다르다. 상담비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제한적이라 비용을 비싸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최근 정신과를 가는 것에 대한 인식은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임상심리를 전공한 상담가에게 받는 심리상담은 “그런 게 있냐”는 반응이 여전히 많다. 심리학과 상담사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구분하는 사람도 드물다.

심리학과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교수님은 학생 시절부터 “심리학과는 전도유망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선진국이 될수록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그런데 교수가 되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무당이나 사주팔자 같은 대체 서비스가 많아서 심리학이 아직도 “전도유망만 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미국에서 AI가 “상담의 보조 수단”이라면, 한국에서는 무당과 철학관을 대체해 AI 심리상담이 처음이자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게 더 위험한 이유다.


실제로 AI 심리상담이 망가뜨린 사람들

AI 챗봇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 AI 심리상담 위험성

AI 심리상담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MBC PD수첩이 올해 6월 방송한 ‘AI,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혼자 오랜 시간 밭을 지키는 한 농부가 등장하는데, 외로움을 느끼던 그는 농업 컨설팅 AI를 쓰다가 점점 사업 구상까지 함께 하게 됐다. AI는 줄곧 그를 지지했고, “상위 0.01%”라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심지어 200억 원짜리 프로젝트라는 말까지 나왔고, 농부는 미국 오픈AI 본사에 보낼 사업 제안서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칭찬 없이 냉정하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하자, AI의 답은 달라졌다. ‘실현 가능성 없음.’ 그 순간 그가 느낀 건 배신감이었다. 듣고 싶은 말만 해줬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다.

비슷한 일이 더 유명한 인물에게도 벌어졌다.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AI 챗봇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양자물리학의 돌파구를 발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 관련 학업이나 연구 경력이 전혀 없는 그가. AI가 그 방향을 계속 지지해준 결과였다.

해외에서 보고된 사례도 있다.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느낀 한 남성이 AI 챗봇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AI는 그의 믿음을 굳혀주는 방향으로 반응했다. 결국 그는 거액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AI가 뒤늦게 전문 상담을 권했지만 이미 “충분히 알았다”고 느껴 상담을 취소했다. 나중에 그는 현실 감각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이런 흐름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망상, AI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애착, 현실 감각 상실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AI 심리상담이 위험한 진짜 이유

APA 조사에서 심리학자의 97%가 “AI가 부정적 행동이나 망상을 의도치 않게 강화할 수 있다”고 답했다. 94%는 “현재 AI는 정신건강 문제를 충분한 섬세함으로 다루지 못한다”고 했다. 89%는 AI가 자해를 조장하거나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챗봇은 사용자가 듣고 싶은 방향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동의하고, 지지하고, 긍정해주는 게 기본값이다. 전문 상담사는 다르다. 공감하면서도 틀린 부분을 건드리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게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날 나는 챗봇에게 주식 얘기를 했고, “숫자는 당신의 존귀함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왜 그 종목을 잡았는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뭘 바꿔야 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포지션을 정리하고 시장을 멀리하는 결정을 내렸다. AI가 해준 게 아니었다.

우리가 배운 심리학 이론도 알고 보면 다른 경우가 있는 것처럼, AI가 제공하는 공감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


피지컬 AI 시대가 오면 달라질까

사람과 대화하는 AI 로봇 피지컬 AI 미래 심리상담

지금 실제 몸을 가진 안드로이드 형태의 AI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표정을 읽고, 목소리 톤을 감지하고,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존재. 지금의 텍스트 AI 심리상담이 “허공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면, 눈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생긴다면 달라질까.

홍성우 씨가 느꼈던 배신감도 없어질까. 아니면 더 깊어질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AI가 얼마나 정교하게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느냐보다, 그 공감이 나를 실제로 변화시키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거다. 완벽하게 공감해주는 존재가 오히려 나를 제자리에 붙잡아둘 수 있다. 그게 지금의 AI 심리상담이 가진, 그리고 앞으로의 AI가 넘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다.


참고: APA 2026 “Psychologists say patients are turning to chatbots as mental health professionals” (2026.6) 
MBC PD수첩 ‘AI,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202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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