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은 아무 관계에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것도 가스라이팅인가요”

온라인 커뮤니티나 연애 상담 게시판을 보면 “이것도 가스라이팅인가요”로 시작하는 글이 정말 많다. 남자친구가 약속을 자주 잊는 것도, 상사가 업무 지시를 바꾸는 것도, 친구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나조차 언젠가 별생각 없이 “그거 완전 가스라이팅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막상 정확히 무슨 뜻으로 쓴 건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다. 다들 이 단어를 쓰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가스라이팅이고 어디서부터는 그냥 의견 차이나 갈등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이 단어의 뿌리부터 다시 찾아봤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읽는 손, 화면은 흐릿하게 처리
“이것도 가스라이팅인가요”로 시작하는 글이 정말 많다

1938년 연극에서 시작해, 1969년 처음 임상 용어가 됐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패트릭 해밀턴이 1938년에 쓴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비롯됐다. 이 작품은 1944년 조지 큐커 감독의 영화 <가스등>으로 각색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영화 속 남편은 아내 몰래 집안의 가스등을 밝게 했다 어둡게 했다 하면서, 아내가 그 변화를 알아채고 이야기하면 “당신이 잘못 본 것”이라며 부인한다. 이런 식으로 아내가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남편이 정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게 줄거리다.

이 제목이 심리학·정신의학 용어로 처음 쓰인 건 1969년, 바턴과 화이트헤드(Barton & Whitehead)가 The Lancet에 발표한 논문에서였다. 이들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학대로 분석하면서 이 영화 속 설정을 빌려왔다. 이후 1970~80년대 정신분석 관련 문헌에서 몇 차례 더 등장했지만(Smith & Sinanan, 1972; Calef & Weinshel, 1981; Gass & Nichols, 1988), 그 뒤로는 한동안 잘 쓰이지 않았다.

흐릿하게 깜빡이는 가스등 한 개
1938년 연극 「가스등」에서 시작된 단어

이 단어를 다시 대중화한 건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이 2007년에 낸 책 『가스라이트 이펙트』였다. 스윗(2019)이 비판적으로 재인용한 스턴의 책 내용에 따르면, 스턴은 가스라이팅을 가해자(‘가스라이터’)와 피해자(‘가스라이티’) 사이의 ‘상호 참여’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피해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가해자를 이상화하고 그의 인정을 갈구하게 됐는지, 그 안에서 자신이 한 역할을 자각하는 게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즉 대중화의 출발점이 된 책부터가, 가해자의 책임과 나란히 피해자의 ‘역할’을 함께 이야기하는 구조였다는 게 스윗의 비판이다.

사회학자가 이 정의에 반박하다

여기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연구가 있다. 사회학자 페이지 스윗(Sweet, 2019)이 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발표한 「가스라이팅의 사회학」의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다. 스윗은 스턴 식의 ‘상호 참여’ 프레임을 비판한다. 스턴이 소개한 사례들은 거의 전부 이성애 관계에서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인데도 “성별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며, 가스라이팅을 가능하게 하는 성별 기반 권력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빼놓고 있다는 것이다.

스윗은 가스라이팅을 순전히 개인 간의 심리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학적인 현상으로 다시 정의한다. 그는 가스라이팅을 “친밀한 관계 안에서 상대가 스스로 미쳤다고 느끼게 만들어, ‘초현실적인’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시도”로 정의하면서, 이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권력이 불균등한 친밀한 관계여야 한다. 둘째, 가해자가 성별 고정관념, 인종·국적·성적 지향 등에 얽힌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제도(경찰·법원·의료·이민 당국 등)에 대한 피해자의 불신이나 취약함을 실제로 동원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갖춰졌을 때에야 상대의 현실감각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도 있다. 전미가정폭력상담전화(NDVH)가 2014년 상담 전화 이용자 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파트너가 의도적으로 당신이 미쳤다고 느끼게 만든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3.8%가 그렇다고 답했다. “정신이 이상하다고 기관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스윗 자신이 진행한 가정폭력 생존자 43명 대상 생애사 인터뷰에서도, 3명을 제외한 전원이 가해자에게서 “미쳤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가스라이팅에는 조건이 있다: 단순 의견 차이와의 경계

이 정의를 따라가 보면, “왜 단순한 갈등이나 의견 차이는 가스라이팅이 아닌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스윗의 기준으로는, 상대와 의견이 다르거나 논쟁에서 밀리는 것 자체는 가스라이팅이 아니다. 가스라이팅이 되려면 그 관계 안에 애초에 권력의 불균형이 있어야 하고, 가해자가 그 불균형—상대가 이 관계나 제도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취약함—을 반복적으로 이용해 상대의 현실 인식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단발성 거짓말이나 한 번의 말싸움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상대가 스스로의 기억과 판단을 의심하게 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저울 또는 균형을 상징하는 미니멀한 오브제 사진
단순한 의견 차이와 가스라이팅을 가르는 건 ‘조건’이다

이 글 도입부에 나온 “약속을 자주 잊는 남자친구”, “지시를 바꾸는 상사”, “동의하지 않는 친구”의 사례로 돌아가보면, 이것만으로는 스윗의 정의에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권력 불균형을 동원해 상대의 현실감각 자체를 흔드는 패턴으로 발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대처법”을 묻기 전에 먼저 필요한 건, 그 상황이 정말 이 구조—불균등한 관계 + 취약함의 반복적 동원—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하는 일인 셈이다.

아무 관계에나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스윗의 논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그는 언론이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나 여론 조작을 가리켜 “대중을 가스라이팅한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런 분석은 “지나치다(go too far)”고 명시적으로 선을 긋는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가스라이팅이 작동하려면 신뢰와 강압적인 관계가 피해자를 가해자에게 묶어두는 ‘친밀한’ 관계여야 하는데, 대중과 정치 지도자 사이에는 그런 결속이 없다. 대중은 얼마든지 사실을 확인하고 반박 서사를 퍼뜨릴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MBTI 과학적 근거는 동전 던지기 수준이었다애착유형 테스트가 알려주는 건 사람이 아니라 관계였다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발견이다. 그 글들은 대중화 과정에서 원래의 통계적 근거나 개념 구조가 흐려진 경우였다면, 가스라이팅은 이 단어를 만들고 정교화한 학자 스스로가 “이 단어를 이렇게까지 넓게 쓰면 안 된다”고 논문에 직접 못 박은 경우다.

한국 법원은 이 말을 어떻게 다룰까

한국에서도 이 단어가 실제 판결문에 등장한 사례들이 있다. 법률 매체 로톡뉴스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은 2021년 상습특수상해 사건 판결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고 심리를 지배한 것을 두고 “이른바 ‘가스라이팅 범죄’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또 다른 법률 매체(대련법률사무소)는 무속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수년간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금품을 갈취하고 살해한 사건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사례를 소개했다.

다만 법조계 자료들을 종합하면, 한국 형법에 ‘가스라이팅죄’라는 독립된 죄명은 없다. 법원은 이를 협박·상해·강간 같은 기존 범죄를 가능하게 한 ‘수단’으로 보거나,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하는 ‘가중 요소’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로톡뉴스는 법원이 대체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를 완전히 장악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막았다”고 볼 수 있을 때 가스라이팅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인정되지는 않으며, 심리적 지배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법적으로 다투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이 글에서 소개한 스윗의 학술적 정의—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권력 불균형과 그 반복적 동원이 있어야 한다—와 상당히 비슷한 결의 기준이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몇 가지는 밝혀야 한다. 스윗(2019)은 미국사회학회가 공개한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다. 반면 바턴·화이트헤드(1969)의 원 논문, 스턴(2007)의 저서, 그리고 한국 법원 판례 관련 내용은 로톡뉴스·대련법률사무소 등 법률 매체가 정리한 요약을 통해 확인했으며, 판결문 원문이나 원 저작 전체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국내 정신의학 전문가의 견해로는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의협신문 인터뷰(2023.1.19.)를 인용했는데, 그는 가스라이팅이 “특정한 병명은 아니”며 “정식 병명이 아니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으로 병원에 오는 일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인터뷰 역시 논문이 아니라 언론 인터뷰라는 점을 밝혀둔다.

또한 이 글은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 자체와 그 정의의 경계를 다뤘을 뿐, 실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대처 방법이나 법적 절차를 상세히 안내하는 글은 아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상황이 떠올랐다면,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정신건강 전문가나 여성가족부 산하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기관 같은 곳에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한다.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무심코 “그거 완전 가스라이팅이네”라고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스윗의 기준으로 보면 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그냥 서운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Sweet, P. L. (2019). The sociology of gaslighting.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84(5), 851–875.

Barton, R., & Whitehead, J. A. (1969). The gas-light phenomenon. The Lancet, 293(7608), 1258–1260.

Stern, R. (2018). The gaslight effect: How to spot and survive the hidden manipulation others use to control your life (Rev. ed.). Harmony Books. (원서 2007)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협신문 인터뷰 (2023. 1. 19.). “나도 ‘가스라이팅’ 피해자? 서울의대 교수에게 듣는 ‘위험 신호’.”

로톡뉴스 (2025. 7. 9.). “법원이 ‘가스라이팅’이라 본 사례들⋯판결문 속 기준 들여다보니.” [창원지방법원 2021년 판결 요약 인용]

대련법률사무소 (2025). “법원, 가스라이팅 후 살해 저지른 무속인에 ‘무기징역’ 선고…가스라이팅이 범죄로 인정되는 핵심 기준은.” [특정 형사 사건 판결 요약 인용]

National Domestic Violence Hotline. Warshaw, C., Lyon, E., Bland, P. J., Phillips, H., & Hooper, M. (2014). Mental health and substance use coercion surveys. National Center on Domestic Violence, Trauma & Mental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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