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수준”이라던 그 한마디
심리학과에 막 들어갔을 때, 한 교수님이 계셨다. 심리학개론 시간이었는데, MBTI 얘기가 나오자 대뜸 정색하며 점성술 수준의 개념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그때는 MBTI가 지금처럼 유명할 때가 아니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이후 성격심리학 수업에서는 빅파이브가 왜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모델인지, 그리고 MBTI는 왜 그만큼의 과학적 엄밀성을 갖추지 못했는지를 배웠다. 그렇게 “MBTI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인상만 추상적으로 머릿속에 남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MBTI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자기소개에 유형을 써넣고, 소개팅 앱 프로필에도 등장하고, 회사 워크숍에서도 심심찮게 쓰인다. 그때 배웠던 세부 내용은 시간이 지나 가물가물해졌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는 인상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MBTI의 과학적 근거를 다시 하나씩 찾아봤고, 그 막연했던 인상이 실제로는 꽤 구체적인 근거를 가진 지적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됐다.
재검사하면 동전 던지기와 같았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심리학자 카를 융의 성격 유형론을 바탕으로,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마이어스가 만든 자기보고식 검사다. 사람을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이라는 네 가지 이분법으로 나눠 16개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비판은 검사-재검사 신뢰도다. 피튼저(Pittenger, 2005)가 Consulting Psychology Journal에 발표한 논문의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다. 이 논문이 인용한 매카를리와 카스카돈(McCarley & Carskadon, 1983)의 연구에 따르면, 검사를 받고 5주 뒤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때 응답자의 50%가 네 개 척도 중 하나 이상에서 처음과 다른 분류를 받았다. 정확히 반반, 동전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확률이다. MBTI 자체 매뉴얼(Myers et al., 1998)에서도 4주 간격 재검사 시 35%가 네 글자 유형 전체가 바뀌었다고 보고했다. 처음 점수가 중간값에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재검사에서 바뀔 확률이 높았는데, 하우스와 카스카돈(Howes & Carskadon, 1979)은 중간값 근처 응답자 중 외향-내향 32%, 감각-직관 25%, 사고-감정 29%, 판단-인식 30%가 재검사에서 라벨이 바뀌었다고 보고했다.

같은 논문에서 매크레이와 코스타(McCrae & Costa, 1989)의 자료를 인용해, MBTI 매뉴얼에 실린 5주~6년 간격 재검사 데이터를 보면 정확히 같은 네 글자 유형이 나온 사람은 31%에서 61%에 그쳤다고 지적한다. 뒤집어 말하면 39%에서 69%는 재검사에서 유형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MBTI를 만들고 관리하는 쪽에서 직접 발표한 매뉴얼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것이라, 비판 측 연구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결과가 정말 타고난 안정된 성격을 반영한다면, 몇 주 만에 유형 자체가 바뀌는 건 이상하다. 이는 MBTI가 사실은 뚜렷하게 나뉜 ‘유형’이 아니라 연속선 위의 ‘정도’를 억지로 두 칸으로 쪼개고 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하비와 머리(Harvey & Murry, 1994)는 이렇게 연속 점수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절차 자체가 척도마다 26%에서 32%의 정보 손실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비판에 반론도 있다. 솔터 외(Salter, Evans, & Forney, 1997)는 20개월 간격으로 재검사했을 때 지배적 기능을 제외하면 비교적 결과가 안정적이었다고 보고했고, 카프라로와 카프라로(Capraro & Capraro, 2002)의 메타분석은 MBTI의 내적 일관성과 검사-재검사 신뢰도가 준수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두 연구는 초록과 2차 자료로만 확인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즉 신뢰도 문제 자체도 “5주 만에 절반이 바뀐다”는 비판과 “20개월이 지나도 대체로 안정적이다”는 반론이 공존하는 상태다.
빅파이브와 비교하면 보이는 것
MBTI 과학적 근거를 더 깊이 파고든 연구가 매크레이와 코스타(McCrae & Costa, 1989)다. Journal of Personality에 실린 이 논문의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다. 이들은 남성 267명과 여성 201명(19~93세)을 대상으로 MBTI와, 오늘날 성격심리학의 표준으로 쓰이는 ‘5요인 모델(빅파이브)’을 함께 측정했다.
핵심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MBTI가 측정한다고 주장하는 ‘뚜렷이 구분된 유형’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었다. 네 개 척도 중 어느 것도 두 봉우리로 나뉘어 분포하지 않았다. 또한 MBTI의 네 이분법을 조합했을 때 나오는 16개 유형이 정말 질적으로 다른 성격 집합이라면, 이분법들 사이에 통계적 상호작용이 나타나야 하는데, 검증 가능한 55개의 상호작용 중 유의미했던 건 단 1개(그것도 여성에게서만)였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MBTI의 네 글자 유형 코드는 네 개의 독립적인 주효과를 요약한 것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둘째, 그럼에도 MBTI의 네 지표가 완전히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자기보고와 지인 평가를 모두 사용한 상관 분석에서, 외향-내향 지표는 빅파이브의 외향성과(자기보고 기준 r≈−.69~−.74), 감각-직관 지표는 개방성과(r≈.69~.72), 사고-감정 지표는 우호성과(r≈.44~.46), 판단-인식 지표는 성실성과(r≈−.46~−.49)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지인이 평가한 성격과도 같은 패턴이 재확인됐다. 문제는 빅파이브의 다섯 번째 핵심 차원인 신경성(정서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지)이었다. 논문은 “MBTI의 어떤 지표도 지인이 평가한 신경성과 관련이 없었다”고 명시했다. 스트레스에 얼마나 취약한지, 감정 기복이 얼마나 큰지는 MBTI 네 글자 어디에도 담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자들의 결론은 상당히 단호하다. “융의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MBTI 사용을 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적으며, MBTI를 계속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융의 유형론이라는 틀을 버리고 빅파이브 관점에서 재해석할 것을 제안했다.
왜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까: 바넘 효과
과학적 근거가 이렇게 흔들리는데도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게 바넘 효과(Barnum effect, 포러 효과)다.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Forer, 1949)는 학생 39명에게 “당신을 위해 준비한” 성격 분석지를 나눠주고 정확도를 5점 만점으로 평가하게 했다. 평균 점수는 4.26점이었다. 그런데 사실 39명 전원이 완전히 똑같은 문서를 받았다. 포러는 이 문장들을 신문 가판대의 별자리 운세 코너에서 그대로 가져와 짜깁기한 것이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처럼,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만큼 모호하고 긍정적인 문장들이었다. 이 실험은 이후 수십 차례 반복됐고, 평균 점수는 늘 4.2점 안팎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MBTI의 유형 설명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당신은 논리적이지만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기도 한다”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긴다”는 식의 문장은, 사실 어느 유형에 갖다 붙여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유형을 미리 알고 그 설명을 읽으면, 자신의 기억 중에서 그 설명과 들어맞는 장면들만 선택적으로 떠올리기 쉽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확인됐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 12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표본오차 ±3.1%p)에서 이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문을 직접 확인했다. 이 조사에서 MBTI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6%,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5%로 팽팽했다. 그런데 MBTI에 대해 잘 안다고 답한 사람들만 따로 보면 신뢰한다는 응답이 55%로 크게 앞섰다. 반대로 들어는 봤지만 잘 모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43%)이 더 많았다. 즉 MBTI를 잘 안다고 스스로 느낄수록 신뢰도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실제 지식 수준이 아니라 친숙함 자체가 신뢰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어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더 흥미로운 수치는 따로 있다. 실제로 MBTI 검사를 받아본 사람 중 83%가 “검사에서 나온 유형이 자신의 실제 성격과 일치한다”고 답했다. 일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앞서 소개한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같은 기관의 조사도 함께 언급하는데, “자신의 혈액형별 성격과 실제 성격이 일치한다”는 응답은 60%였다. MBTI에 대한 ‘일치한다’는 응답(83%)이 혈액형 성격론(60%)보다 오히려 더 높았던 셈이다. 포러의 학생들이 가짜 성격 분석지에 4.26점을 준 것과 비슷한 구조가,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MBTI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력하면 는다는 말, 절반만 맞았다에서 다룬 성장 마인드셋처럼, 이 이야기도 “MBTI는 전부 거짓말이다”로 끝나지는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갖는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언어가 마치 정밀한 과학적 진단인 것처럼 취급될 때, 그리고 채용이나 인사처럼 중요한 결정에 쓰일 때 생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MBTI를 직원 채용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43%)이 “적절하다”(26%)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몇 가지는 밝혀야 한다. 이번엔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핵심 논문 두 편—피튼저(2005)와 매크레이·코스타(1989)—의 오픈 액세스 전문을 모두 직접 확인했다. 반면 솔터 외(1997), 카프라로·카프라로(2002), 포러(1949)는 초록과 이를 인용·정리한 2차 자료를 교차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원문을 직접 읽으면서 애초 계획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처음엔 여러 MBTI 비평 사이트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5주 뒤 39%에서 최대 76%가 다른 유형으로 바뀐다”는 수치를 쓰려 했다. 그런데 피튼저(2005)의 원문을 직접 확인해보니, 그 논문이 실제로 인용한 수치는 “5주 뒤 50%가 하나 이상의 척도에서 다른 분류를 받았다”(McCarley & Carskadon, 1983)와 “4주 뒤 35%가 네 글자 유형 전체가 바뀌었다”(MBTI 매뉴얼 자체 데이터, Myers et al., 1998)였다. “39~76%”라는 숫자는 이 원문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널리 돌아다니는 통계가 반복 인용 과정에서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제목과 본문의 수치를 원문에서 직접 확인한 50%로 정정했다.
또한 MBTI에 대한 학계 평가가 완전히 한 방향은 아니라는 점도 다시 강조해야 한다. 검사-재검사 신뢰도만 봐도 “5주 만에 절반이 바뀐다”는 비판과 “20개월이 지나도 대체로 안정적이다”는 반론이 공존한다. 이 글은 비판적인 자료를 더 많이 인용했지만, MBTI를 옹호하거나 재해석하려는 학자들의 논의도 실재한다는 걸 밝혀둔다. MBTI 과학적 근거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무가치하다”와 “충분히 과학적이다” 사이 어딘가로 요약한다면, “네 개의 축 중 상당수는 이미 알려진 성격 차원과 겹치지만, 그걸 이분법적 유형으로 나누는 방식과 다섯 번째 핵심 차원(신경성)의 부재가 문제”라는 쪽이 더 정확한 설명인 것 같다.
그 교수님이 하셨던 “점성술 수준”이라는 말은, 정확히는 과장이었을 수도 있다. 별자리 운세와 달리 MBTI의 네 지표 중 상당수는 실제 성격 차원과 통계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 다만 그 말이 겨냥했던 핵심—결과를 지나치게 믿고 사람을 네 글자로 못박아버리는 태도—는, 이번에 원문을 직접 찾아보니 꽤 정확한 지적이었다.
참고문헌
Pittenger, D. J. (2005). Cautionary comments regarding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Consulting Psychology Journal: Practice and Research, 57(3), 210–221.
McCrae, R. R., & Costa, P. T. (1989). Reinterpreting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ive-factor model of personality. Journal of Personality, 57(1), 17–40.
Salter, D. W., Evans, N. J., & Forney, D. S. (1997). Test-retest of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An examination of dominant functioning.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Measurement, 57(4), 590–597.
Capraro, R. M., & Capraro, M. M. (2002). Myers-Briggs Type Indicator score reliability across studies: A meta-analytic reliability generalization study.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Measurement, 62(4), 590–602.
Forer, B. R. (1949). The fallacy of personal validation: A classroom demonstration of gullibility.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44(1), 118–123.
한국리서치. (2021. 12. 10.~13.). [별난리서치] MBTI,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론 속의 여론.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표본오차 ±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