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완전 회피형이더라”
요즘 연애 상담 글이나 소개팅 후기를 보면 “그 사람 완전 회피형이더라”, “나는 불안형이라 이런 거에 예민해” 같은 표현이 자주 보인다. MBTI 다음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상대를 설명할 때 즐겨 쓰는 말이 애착유형이 된 것 같다. 앞서 MBTI 과학적 근거는 동전 던지기 수준이었다에서 MBTI를 들여다봤을 때는, 이론 자체가 원래 허약했다. 애착유형은 다를까? 존 볼비와 메리 에인스워스로 이어지는 애착이론은 심리학에서 꽤 오래되고 널리 인정받는 이론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요즘 유행하는 “회피형 남친 특징” 같은 콘텐츠가 그 이론을 얼마나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는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원 이론과 대중화된 버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봤다.

애착유형 테스트의 뿌리: 3개의 유형과 관찰 실험
애착이론의 출발점은 존 볼비다. 그는 아동이 양육자에게 느끼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의 심리적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을 실증적으로 검증한 사람이 메리 에인스워스다. 그가 1970년대에 고안한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은 생후 12~18개월 영아를 대상으로, 양육자가 방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절차였다. 이 실험을 통해 에인스워스는 원래 세 가지 애착 유형—안정형, 불안-저항형, 회피형—을 제시했고, 이후 메인과 솔로몬이 혼란형을 추가로 확인했다.
여기서 첫 번째로 짚을 게 있다. 원 실험은 성인 연애가 아니라 영유아와 양육자 사이의 관계를 다뤘다는 점이다. “회피형 남친”, “불안형 여친” 같은 표현이 다루는 성인 연애 애착은 이 원 실험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이후 연구자들이 별도로 확장한 이론이다.
성인 애착으로의 확장: 유형이 아니라 두 개의 숫자
성인의 연애 관계에 애착이론을 처음 적용한 건 헤이즌과 셰이버(Hazan & Shaver, 1987)였다. 이후 바솔로뮤와 호로위츠(Bartholomew & Horowitz, 1991)가 안정형·집착형(불안형)·거부형(회피형)·공포회피형(혼란형)이라는 4유형 모델을 제안했고, 브레넌·클라크·셰이버(Brennan, Clark, & Shaver, 1998)는 이를 측정하는 ECR(Experiences in Close Relationships) 척도를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척도의 설계 방식이다. ECR은 사람을 4개의 상자 중 하나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불안(anxiety)’과 ‘회피(avoidance)’라는 두 개의 연속적인 축 위에 점수를 매긴다. 흔히 말하는 안정형·불안형·회피형·혼란형은 이 두 축의 점수가 높은지 낮은지를 기준으로 나눈 사분면일 뿐이다. 즉 학술적으로는 “당신은 회피형입니다”보다 “당신은 회피 축에서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합니다”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 구조는 MBTI가 연속적인 성격 특성을 억지로 이분법 상자에 욱여넣는다는 비판과 거울처럼 닮았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 MBTI를 검증한 매크레이와 코스타(1989)는 이분법을 뒷받침하는 통계적 근거(두 봉우리 분포)를 찾지 못했지만, 성인 애착 쪽에서도 프레일리와 월러(Fraley & Waller, 1998)가 비슷한 방식으로 검증한 결과 역시 범주형 모델보다 차원 모델이 데이터에 더 잘 맞는다는 결론을 냈다. 애착유형도 원래는 ‘유형’이 아니라 ‘정도’였다는 뜻이다.
재검사 신뢰도는 오히려 MBTI보다 탄탄하다
MBTI 글을 쓸 때는 재검사 신뢰도가 가장 큰 약점이었다. 애착유형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이 지점에서는 결과가 반대다. ECR과 그 축약형인 ECR-S에 대한 여러 검증 연구에 따르면, 3주~1개월 간격으로 재검사했을 때 신뢰도 계수가 .80~.83 수준으로 나타났고, 개정판인 ECR-R은 3주 간격 재검사에서 85%의 분산을 공유할 만큼 안정적이었다. 내적 일관성(같은 척도 안 문항들이 서로 얼마나 일관되게 응답되는지)도 .89~.95로 매우 높았다. 이 수치들은 초록과 이를 인용한 검증 논문을 통해 확인했으며, 원문 전체를 직접 읽지는 못했다. 다만 여러 독립된 검증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 수치라, MBTI 재검사 신뢰도(5주 뒤 50%가 다른 분류)보다는 훨씬 믿을 만해 보인다. 즉 애착유형을 측정하는 도구 자체는 MBTI보다 심리측정학적으로 더 탄탄하다.
그런데 얼마나 안정적으로 ‘고정’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측정 도구가 안정적이라는 것과, 애착 성향 자체가 평생 고정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프레일리(Fraley, 2002)가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에 발표한 메타분석의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다. 이 연구는 생후 12개월에 측정한 애착 안정성과 이후 시점(2세, 4세, 6세, 19세) 사이의 상관관계를 기존 종단 연구들을 종합해 추정했다. 결과는 생후 1년~1.5세 구간 상관 .32, 1~4세 .35, 1~19세 .27이었다. 프레일리는 이 데이터에 두 이론 모델—경험이 계속 갱신된다는 ‘수정론’과 초기 경험이 원형으로 남아 평생 영향을 준다는 ‘원형론’—을 적용해봤는데, 원형론이 데이터에 훨씬 잘 들어맞았다(R²=.78 대 .17). 원형론이 추정한 안정성 계수는 ρ=.39로, 초기 애착이 이후 애착에 ‘중간 정도’의 영향을 미치되,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프레일리는 이 패턴을 “안정적 불안정성(stable instability)”이라고 불렀다—개인의 애착 성향이 어떤 기준값 주변에서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작위로 흔들리지도, 완전히 고정되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부모와의 애착, 연인과의 애착—상관은 겨우 .3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발견은 따로 있다. 애착유형 테스트 결과를 “이 사람은 회피형이다”처럼 사람 전체에 붙이는 라벨로 쓰는 게 SNS 콘텐츠의 흔한 방식인데, 원 논문이 인용한 데이터는 이 전제 자체를 흔든다. 오웬스 외(Owens et al., 1995)가 약혼한 커플 45쌍을 대상으로 부모에 대한 애착 안정성과 연인에 대한 애착 안정성을 각각 측정했더니, 두 안정성 사이의 상관은 약 .29였다. 프레일리와 셰이버가 미발표 자료(215명의 연애 중인 대학생 대상)에서 측정한 상관도 .30으로 거의 동일했다. 즉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과 연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애착 사이에는 약한~중간 수준의 연관성만 있을 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애착은 애초에 ‘그 사람’에게 붙는 딱지가 아니라, ‘그 사람과 특정 관계’ 사이에서 나타나는 패턴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SNS에서는 왜 고정된 딱지가 됐을까
그런데 실제 온라인 콘텐츠에서는 이 뉘앙스가 대부분 사라진다. “회피형은 만나지 마라”는 식의 단정적인 조언이 흔하고, 관계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정도의 문제인 개념이 한 사람의 고정된 본질이자 연애 상대를 거르는 판단 기준으로 단순화되곤 한다.
이런 자가진단 콘텐츠의 유행에 대해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시빅뉴스와의 인터뷰(2025.10.17.)에서,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의 ‘포러 효과(바넘 효과)’를 근거로 이런 자가진단 테스트를 맹목적으로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MBTI 글에서 다룬 바넘 효과—모호하고 긍정적인 문장은 누구에게나 그럴듯하게 들어맞는다는 것—가 애착유형 콘텐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 인터뷰는 심리테스트 전반에 대한 일반적 경고이지, 애착유형이나 ECR 척도 자체를 표적으로 한 학술적 비판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둔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몇 가지는 밝혀야 한다. 이 글에서 프레일리(Fraley, 2002)는 오픈 액세스 전문을 직접 확인했고, 오웬스 외(1995)와 프레일리·셰이버의 미발표 자료 수치는 이 프레일리(2002) 논문이 직접 인용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반면 볼비와 에인스워스의 원 저작, 헤이즌·셰이버(1987), 바솔로뮤·호로위츠(1991), 브레넌 외(1998)의 ECR 원 논문, 그리고 ECR의 재검사 신뢰도 수치는 모두 초록과 이를 인용한 2차 자료를 교차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다만 에인스워스의 낯선 상황 실험과 관련한 기본적 사실(3개 유형, 이후 혼란형 추가)은 여러 독립된 개론서·리뷰에서 일관되게 확인됐다.
이 글의 결론은 MBTI 글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MBTI는 이분법 구조와 재검사 신뢰도 양쪽 모두에서 근거가 약했다. 애착이론은 재검사 신뢰도 면에서는 오히려 탄탄한 편이고, 안정성 연구(Fraley, 2002)도 정교한 방법론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 이론이 SNS 콘텐츠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연속적 정도”가 “고정된 유형”으로, “관계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패턴”이 “그 사람의 본질”로 단순화됐다는 데 있다. 그러니 이 글은 “애착유형은 가짜다”가 아니라, “이론은 탄탄한데 대중화된 버전이 이론의 핵심 전제를 놓치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친구가 “그 사람 완전 회피형이야”라고 말할 때, 아마 그 사람은 친구 앞에서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다른 관계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Fraley, R. C. (2002). Attachment stability from infancy to adulthood: Meta-analysis and dynamic modeling of developmental mechanism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6(2), 123–151.
Ainsworth, M. D. S., Blehar, M. C., Waters, E., & Wall, S. (1978). Patterns of attachment. Lawrence Erlbaum Associates.
Hazan, C., & Shaver, P. R. (1987). Romantic love conceptualized as an attachment proc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9(3), 511–524.
Bartholomew, K., & Horowitz, L. M. (1991). Attachment styles among young adults: A test of a four-category mode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1(2), 226–244.
Brennan, K. A., Clark, C. L., & Shaver, P. R. (1998). Self-report measurement of adult attachment: An integrative overview. In J. A. Simpson & W. S. Rholes (Eds.), Attachment theory and close relationships (pp. 46–76). Guilford Press.
Fraley, R. C., & Waller, N. G. (1998). Adult attachment patterns: A test of the typological model. In J. A. Simpson & W. S. Rholes (Eds.), Attachment theory and close relationships (pp. 77–114). Guilford Press.
Owens, G., Crowell, J. A., Pan, H., Treboux, D., O’Connor, E., & Waters, E. (1995). The prototype hypothesis and the origins of attachment working models. Monographs of the Society for Research in Child Development, 60(2–3), 216–233.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시빅뉴스 인터뷰 (2025. 10. 17.). “MBTI부터 애착유형 테스트까지… 소통의 기술이 된 자가 진단 콘텐츠.” https://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