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착각
조직에서 성과가 좋은 사람을 볼 때 흔히 하는 생각이 있다. 저 정도로 잘하는 사람이면 웬만한 실수나 부진쯤은 가볍게 털고 넘어갈 거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부진한 분기, 예상보다 낮은 평가 하나에 가장 크게 흔들리는 쪽은 의외로 평소에 가장 잘하던 사람인 경우가 적지 않다. 겉으로는 여전히 성과를 내고 있어서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 정작 본인은 그 작은 균열 하나로 자신에 대한 확신 전체가 흔들리는 걸 경험한다.
20년간 운동선수들을 지켜본 사람이 본 것
Fast Company에 스포츠 에이전트 출신 리더십 코치 몰리 플레처가 쓴 글이 있다. 그는 거의 20년간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며 정상급 선수들을 대리했다. 그가 자주 목격한 장면은 이랬다. 최정상에 있던 선수가 한 번의 부진한 경기, 슬럼프, 컷 탈락 하나로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였다. 재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성과의 오르내림을 감당할 내적인 여력을 애초에 만들어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리더십 코칭 현장에서도 똑같은 패턴을 본다고 말한다. 조직은 오랫동안 성과 그 자체만 보상해왔고,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내적 기반은 방치해왔다. 그 결과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내면은 부서지기 쉬운 리더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과에 그대로 포개어놓은 상태라, 그 성과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대응할 틀이 없다.
플레처는 이걸 번아웃과 구분한다. 번아웃은 이미 늦은 상태에서 드러나는 결과다. 그가 말하는 건 그보다 훨씬 이전, 눈에 잘 띄지 않는 단계다. 겉으로는 여전히 성과를 내고 있는 고성과자의 심리적 기반이 조용히 침식되는 과정이다.
· 가장 취약한 건 의욕 없는 직원이 아니라 최고 성과자인 경우가 많음
· 성과와 정체성이 하나로 붙어버리면(정체성 융합), 작은 부진도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짐
· 번아웃은 결과, 이 침식은 그보다 앞서 조용히 진행되는 과정
· 3번의 실패 끝에 플로리다 해협을 횡단한 다이애나 나이애드처럼, 관건은 “실패 없음”이 아니라 “실패를 처리하는 틀”이 있는가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제안하는 해법이다. 그는 조직이 확실성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리더를 승진시키고, “잘 모르겠다, 한번 알아보자”고 말하는 리더는 은연중에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가 관찰한 바로는, 끝까지 버틴 선수들은 오히려 계속 질문을 던지고 궁금해하던 쪽이었다. 반대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고 지난 성공 공식에만 의존하던 쪽은 어느 순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라고 되묻는 처지가 됐다.
조직이 정말 챙겨야 할 건 웰니스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플레처는 이 문제의 해법이 명상 앱이나 마음건강 휴가 같은 웰니스 체크리스트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가 말하는 건 조직이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만큼 심리적 기반도 함께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흔들리고 있다는 걸 말해도 경력에 불이익이 없는 분위기,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위에서부터 모범이 되는 문화, 회복탄력성을 성격 특성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구체적인 역량으로 다루는 접근이다.
다만 이 이야기가 20년간 선수들을 대리한 한 개인의 관찰과 코칭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대규모 표본을 통한 통계적 검증을 거친 연구는 아니고,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특수한 경력에서 비롯된 해석이다. 그래도 조직 안에서 성과 좋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잘 챙겨야 한다는 발상 자체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결국 “저 사람은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판단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나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지금 가장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먼저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Fletcher, M. (2026, June 8). The leadership crisis nobody is talking about: why your high performers might be your most vulnerable employees. Fast Company. https://www.fastcompany.com/91542467/the-leadership-crisis-nobody-is-talking-about-when-high-performers-lose-themselves-in-the-job-leadership-burnout-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