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도 너무 짰는데, 왜 그렇게 뿌듯했을까
한 번은 어느 날 갑자기 감바스가 먹고 싶어져서,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본 적이 있다. 마늘과 새우, 올리브 오일까지 정성껏 준비했다. 그런데 소금 양을 눈대중으로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결과물은 먹기 힘들 정도로 짰다. 레시피에 적힌 계량을 그대로 따랐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짠 감바스 한 접시를 앞에 두고 꽤 뿌듯했다. 마늘을 얇게 썰고, 기름 온도를 맞추고, 새우가 익어가는 걸 지켜보던 그 시간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냥 식당에서 사 먹거나, AI에게 정확한 계량을 물어 그대로 따라 했다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뿌듯함은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최근 읽은 심리학 글은 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줬다. 바로 AI 시대 창의성이다. 결과의 완성도가 아니라, 서툴게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 자체에서 나오는 만족감을 뜻한다. 저자는 나무를 깎고 다듬다가 결국 톱밥 더미만 남기는 목공 광고를 예로 든다. 그 광고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그 시간을 보낼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AI 시대 창의성, 왜 여전히 스스로 배우고 싶어할까
저자는 요즘 우리가 결과물의 양을 결과물의 질보다 중시하는 게 아닌지 묻는다. 패스트패션은 별다른 노력이나 창의성 없이도 잠깐의 트렌디함을 안겨준다. AI는 결혼식 축사, 노래 가사, 마당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몇 초 만에 만들어준다. 창의성이 삶에서 빠지면 무엇을 잃게 될까?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걸 배우려는 동기, 그 과정에서 실패할 기회까지 함께 사라진다면 어떨까? 우리의 자기효능감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은 괜찮을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로라 크루즈와 동료들은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연구를 진행했다. 대학생 650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동기 수준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생이 여전히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복잡한 문제에도 기꺼이 도전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회복탄력성의 관점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도 있었다. 호기심이 높은 학생일수록 삶의 즐거움과 스트레스 내성 점수도 더 높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성향을 ‘인식적 호기심’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한다.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도, 스스로 문제를 헤쳐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히 아주 인간적인 특성으로 남아 있다.
· 대학생 650명 조사에서, 호기심이 높을수록 삶의 즐거움과 스트레스 내성 점수도 높았음
· ‘인식적 호기심’: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성향
·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 창의적인 사람은 가장 효율적인 답을 고르기보다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함
· 창의성과 호기심은 화려한 취미가 아니어도, 일상의 작은 시도만으로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음
창의성과 호기심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무채색 정장에 알록달록한 양말을 신는 정도의 작은 시도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창의성은 아직 없는 것을 그려보는 힘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과정이기도 하다. 창의성 연구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창의성을 변화의 힘으로 바라봤다. 그가 발견한 건, 정말 창의적인 사람들은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고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쪽을 택했다. 회복탄력성도 이와 같은 태도에 기대고 있다. 일상의 문제를 풀어나갈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아보려는 의지 말이다.
빠른 답보다 서툰 과정이 남기는 것
그렇다면 창의성과 호기심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세상을 탐색할 기술이 필요하다. 목공이든 독서든 비판적 사고든 상관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패의 불편함을 견디고 버텨내는 동기가 필요하다. 창의성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나은 문제 해결사가 된다. 자신의 미래도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매번 똑같은 방식만 반복하면 어떨까.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어도 좀처럼 성장하기는 어렵다.
몇 가지 질문으로 스스로를 점검해볼 수 있다. 돈이 부족할 때도 즐길 거리를 찾아내는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그 사람이 만족할 방식으로 도와주는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걸 즐기는가? 화면만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스스로 즐길 방법을 찾는가? 이런 질문들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항목이 많을수록, 창의성과 호기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닥쳤을 때, 이런 성향이 새로운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AI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나 전반적인 웰빙까지 채워주진 못할 수 있다.
AI 브레인 프라이에서 다뤘던 것처럼, 우리가 사고 과정을 얼마나 AI에 맡기느냐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인지 능력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AI 시대 창의성은 이 질문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 너무 짰던 감바스 한 접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였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지켜보던 그 과정이 나에게 뭔가를 남겼다. AI가 다 대신해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가끔은 서툴게 직접 해보는 시간을 일부러 남겨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Cruz, L., Strickland, M., & Cruz, C. (2026). An exploratory study of the dimensions of curiosity reported by U.S. college students. Discover Education, 5, 551.
Sternberg, R. J. (2003). Wisdom, intelligence, and creativity synthesiz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Ungar, M. (2026, July 21). Creativity and curiosity are still important in the age of AI.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nurturing-resilience/202607/creativity-and-curiosity-are-still-important-in-the-age-of-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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