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고 나니, 부모님이 더 좋아 보였다
얼마 전 친척 모임에서 사촌동생이 분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의 부모님은 표정이 눈에 띄게 편해 보였다. “이제 애 걱정 안 해도 되니까 홀가분하다”며 웃으시는 모습에 나도 조금 놀랐다. 걱정하고 서운해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 분만의 시간을 즐기는 쪽에 훨씬 가까웠다. 빈둥지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가 독립하면 부모, 특히 엄마가 상실감과 허전함을 크게 느낀다는 뜻이다. 대학생 때부터 혼자 서울로 올라와 쭉 이곳에서 지낸 나는, 정작 우리 부모님이 이 시기를 겪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사촌동생 부모님의 표정이 더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날 본 게 예외였을까, 아니면 ‘빈둥지증후군’이라는 통념 쪽이 실제와 다른 걸까. 최근 연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빈둥지 이후, 부부 3,867쌍을 추적한 결과는 달랐다
수전 크라우스 휘트본에 따르면, 빈둥지증후군이라는 개념은 여성의 정체성을 ‘부모 역할’에 크게 의존시켰던 시대의 산물에 가깝다. 자녀 양육이라는 역할을 잃으면 삶의 의미도 함께 잃는다는 ‘역할 이론’이 그 배경이다. 하지만 2009년 미첼과 러브그린의 연구는 실제로 빈둥지증후군을 겪는 부모가 작고 특정한 소수에 그친다는 걸 보여줬다. 심지어 ‘가족 생애주기’ 이론에서도, 부부 만족도는 자녀가 태어난 뒤 떨어졌다가 자녀가 독립할 때 다시 올라가는 패턴을 보인다. 자녀의 독립이 상실의 시작이라기보다, 오히려 회복의 시작점에 가깝다는 뜻이다. 2025년 테레사 파울리 연구팀은 이 전환을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봤다. 자녀의 독립을 한쪽 부모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겪는 ‘공유된 전환’으로 본 것이다. 연구팀은 독일 부부 2,895쌍(최장 35년), 호주 부부 972쌍(19년), 총 3,867쌍의 빈둥지 전환 사례를 추적하며 매년 삶의 만족도, 신체 증상, 건강 상태, 정신건강을 조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 점수는 시간이 지나도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건강 상태 평가와 신체 증상은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이는 논문에서도 노화와 관련된 변화로 해석된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따로 있었다. 자녀가 독립한 이후, 부부의 삶의 만족도와 건강 변화가 서로 더 강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결속력(concordance)’이라고 부르는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한 사람의 컨디션이 좋으면 배우자의 컨디션도 함께 좋아지는 일종의 전염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자녀가 집을 채우던 역할을 부부가 서로에게서 더 많이 찾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