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붙들려 있는 거였다

 

3년 만에 온 연락

지난주에 전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3년 만이었다. 이직을 알아보고 있는데 내가 옮긴 쪽 업계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지면서, 사실은 3년 전부터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그때가 떠올랐다. 같이 일하던 시절 그는 팀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축이었다. 회의에서 먼저 손 들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상사 앞에서는 늘 밝았다. 나는 그가 그 일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가끔 둘이 술 마실 때 회사 얘기를 하며 한숨을 쉬긴 했지만, 다들 그 정도는 하니까.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같은 자리에 있고, 여전히 “알아보고는 있다”고 말한다. 그 사이 그의 목소리에서 예전 같은 기운은 확실히 빠져 있었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이 다른데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걸, 최근에는 “잡 허깅(job hugging)”이라는 말로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회의에서 밝은 표정으로 발언하지만 속내는 지쳐 보이는 직장인, 잡 허깅
캡션: 3년 만에 온 연락

잡 허깅, 애정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Fast Company의 알렉스 크리스천이 정리한 내용이다. AI 도입, 관세, 물가 상승 같은 요인으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노동시장 전반의 이직률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 갤럽의 2025년 글로벌 워크플레이스 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몰입도는 21%까지 떨어졌고, 조직심리 컨설팅기업 프랙셔널 인사이츠가 2025년 3월 미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44%가 이직 의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업무 관련 불안”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 조사를 진행한 프랙셔널 인사이츠의 최고과학책임자 에린 이토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잡 허깅을 하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다.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도 크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어 할 가능성도 크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자주 나타나는 게 일종의 자기방어적 행동이라고 짚는다. “별일 없어요, 저는 잘하고 있고, 떠날 생각 없어요”라는 티를 일부러 내는 식이다.

“대퇴사 시대(Great Resignation)”를 예견했던 조직행동학자 앤서니 클로츠는 이 상태가 번아웃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일이 마음에 안 드는데도 계속 필요 이상으로 애쓰고 있다면, 그건 번아웃으로 가는 편도 티켓이다.” 실제로 잡 허깅은 조용히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사람을 갉아먹는다. 어차피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마음이 되면 자발적으로 더 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몰입도 함께 떨어진다.

클로츠는 이걸 악순환으로 설명한다. 진 빠지는 상황에 계속 놓여 있으면 그 상황을 곱씹느라 더 지치고, 회사 밖에서 회복할 에너지조차 남지 않아 다음 날 출근을 이미 방전된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조직이나 동료보다 자기 자신만 챙기게 되면서 동료 관계도 옅어지고, 냉소적인 태도가 굳어진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보는 직장인의 뒷모습, 잡 허깅
애정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버티는 것과 붙들려 있는 것

한 가지 짚어둘 지점이 있다. 44%라는 수치를 낸 프랙셔널 인사이츠는 조직심리 컨설팅을 판매하는 회사이기도 해서, “직장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진단이 이 회사의 사업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수치 자체가 틀렸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참고할 때 함께 봐야 할 지점이다. 갤럽의 21% 몰입도 수치는 이와 별개로, 25만 명 규모의 독립적인 설문 데이터에 기반한다.

고성과자 번아웃에서 다뤘던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그 글에서는 겉으로는 여전히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의 내면이 조용히 침식되는 과정을 다뤘는데, 잡 허깅도 비슷하다. 겉모습과 속마음의 격차가 클수록, 그 격차를 계속 메우는 데 쓰는 에너지가 눈에 띄지 않게 소진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클로츠가 제안하는 대안도 거창하지 않다. 상사와 대화해서 상황을 개선해보는 것, 안 되면 힘든 역할 중에서도 좋아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인지적 재해석, 그것도 안 되면 조용한 사직처럼 맡은 일 이상은 하지 않으며 선을 긋는 것 정도다. 셋 다 상황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 격차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조금은 줄여준다.

그 통화를 끊고 한참 생각했다. 3년 전 내가 봤던 그의 열심은 일에 대한 애정이었을까, 아니면 떠나지 못하는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만들어낸 표정이었을까. 그때는 물어볼 생각조차 못 했다.

이제 와서 그걸 다시 물어볼 수는 없다. 다만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잘 지내는 것 같다”는 판단을 예전만큼 쉽게 내리지 않게 됐다.

참고문헌

Christian, A. (2025, December 4). Why ‘job hugging’ can be worse than quitting. Fast Company. https://www.fastcompany.com/91447592/the-hidden-psychological-costs-of-job-hugging

Gallup. (2025).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5 Report. https://www.gallup.com/file/workplace/659528/state-of-the-global-workplace-2025-download.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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