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다 지켰는데, 왜 이렇게 의욕이 없었을까
한 번은 모든 업무 과정을 세세하게 보고해야 했던 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어떤 순서로 일할지, 언제 쉴지, 심지어 이메일 문구까지 미리 정해진 틀을 따라야 했다. 처음엔 실수를 줄이려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무기력해졌다. 일을 못 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은 정확하게 해냈다. 문제는 그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점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그냥 내가 이 일과 안 맞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심리학 글을 보고서야 그 무기력의 정체를 알게 됐다. 업무 동기 3요소, 즉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동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35년간 쌓인 1,192편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이 세 가지가 직업이나 나이, 경력과 무관하게 일에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성장하기 위한 공통 조건이라고 결론지었다.
업무 동기 3요소, 자율성·유능감·관계성
첫 번째는 자율성이다. 규칙 없이 마음대로 일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 즉 선택권과 진정성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압박받거나 사사건건 감시당한다고 느끼면 동기는 서서히 무너진다. 반대로 신뢰받고 의미 있는 선택권을 가진 직원일수록 동기의 질도, 성과도 더 높았다.
두 번째는 유능감이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력이 느는 감각이다. 배우고 성장할 기회, 쓸모 있는 피드백, 숙련의 경험이 있을 때 사람은 일에 몰입한다. 반대로 일이 너무 혼란스럽거나 불가능해 보이거나 성장의 여지가 없으면 동기는 시든다.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관계성이다. 사람들은 흔히 조직이 아니라 상사 때문에 퇴사하고, 일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남는다고 말한다. 동료의 지지, 귀 기울여주는 상사, 소속감을 느끼는 짧은 순간들도 동기와 웰빙에 영향을 준다. 특히 재택·하이브리드 근무가 늘면서, 유연성은 커졌지만 이런 연결의 기회는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 35년간 1,192편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 직무 만족과 성과의 공통 기반으로 확인됨
· 압박·죄책감·보상으로 만든 동기보다, 즐거움과 의미에서 나온 동기가 웰빙과 성과 모두에서 더 우수함
· 통제받고, 과부하되고, 고립될 때 사람은 ‘욕구 좌절’을 겪으며 번아웃과 이직 의도로 이어짐
· 조직뿐 아니라 개인도 업무를 스스로 조정하는 ‘잡 크래프팅’으로 세 욕구를 채울 수 있음
여기서 중요한 건 동기의 양보다 질이다. 많은 회사가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까”를 고민하지만, 저자는 “애초에 왜 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즐거움과 의미에서 나온 동기는 압박, 죄책감, 보상, 두려움에서 나온 동기보다 웰빙과 성과 모두에서 꾸준히 더 나은 결과를 냈다. 성과를 위해 반드시 희생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즐거움과 의미를 느낄 때 가장 잘 성장한다.
세 가지 욕구가 무너지면 번아웃이 된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욕구가 단순히 충족되지 않는 것과, 적극적으로 짓밟히는 것은 다르다고 짚는다. 신뢰받는 대신 통제당하고, 자원을 지원받는 대신 과부하되고, 연결되는 대신 고립될 때 사람은 ‘욕구 좌절’을 겪는다. 이런 좌절은 번아웃, 무기력, 낮은 웰빙, 그리고 퇴사 의도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조직은 이 세 욕구를 지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짓밟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질문이 AI와 원격근무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AI는 사람을 더 유능하게 느끼게 할까, 아니면 통제력을 빼앗을까. 원격근무는 유연성을 주는 대신 연결을 앗아가지는 않을까. 알고리즘이 사람 대신 관리자 역할을 할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새로운 기술이 “좋은가 나쁜가”보다,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을 지지하는가, 해치는가”를 묻는 게 더 정확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고성과자 번아웃에서 다뤘던 것처럼, 겉으로는 잘 해내고 있어 보여도 이 세 욕구 중 하나가 무너져 있으면 사람은 소진된다. 그때 세세한 지시로 가득했던 팀에서 느꼈던 무기력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왜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 욕구들은 조직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동료와의 관계를 조금 더 챙기거나, 업무를 개인적인 가치와 연결해보는 작은 시도만으로도 세 욕구는 조금씩 채워질 수 있다.
참고문헌
Gagné, M., Olafsen, A. H., Carpini, J. A., & Frølund, C. W. (2026). Self-determination theory in the workplace: the evolution, present, and beyond.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210(11614), 6.
Gagné, M. (2026, July 7). The secret to enjoying work more.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getting-up-on-monday-morning/202607/the-secret-to-enjoying-work-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