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세 번쯤 준비하다가 그만뒀다
작년부터 공개는 하지 않았지만 이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둔 지 꽤 됐다. 몇 번은 채용 공고를 캡처해서 저장하고, 자기소개서 초안까지 써봤다. 그런데 막상 지원 버튼 앞에서 매번 멈췄다. “지금 시기가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마지막에 발목을 잡았다. 나만 이런가 싶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비슷한 얘기가 많았다.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정작 실행하는 사람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 이게 나만의 착각인지, 실제 통계로도 확인되는지 궁금해졌다.

미국에서 시작된 “잡 허깅”
미국에서는 2025년 하반기부터 “잡 허깅(Job Hugging)”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팬데믹 직후 “대퇴사(Great Resignation)”와 “잡 호핑(Job Hopping)”이 유행했던 것과 정반대로, 지금 일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떠나지 않고 붙들고(hug) 있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구인·이직 실태조사(JOLTS)에서도 2025년 6월 기준 자발적 퇴사율이 2.1%로, 2022년 대퇴사 시기의 정점(3%)보다 뚜렷이 낮아진 걸로 나타났다. AI 확산과 채용 축소로 고용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만족스러운 자리라도 일단 지키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붙들려 있는 거였다에서 다뤘듯, 이렇게 남아 있는 상태는 애정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까운 경우가 많고, 그냥 버티는 것보다 오히려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진단도 있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MZ세대는 이직을 밥 먹듯 한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통념처럼 퍼져 있었는데, 최근 노동시장 분위기가 정말 그런 통념과 맞아떨어지는지 원자료로 확인해봤다.
이직자는 8개월째 함께 줄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달 발표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는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입직자·이직자 수와 입직률·이직률을 집계하는 공식 지정통계다. 이 자료를 월별로 따라가 보면 뚜렷한 흐름이 보인다.
2025년 11월 발표(2025년 하반기 결과) 브리핑에서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입직자와 이직자는 지금 8개월째 동반 감소”이며, “경기가 안 좋으면 실질적으로 노동 이동은 좀 굳어 있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브리핑룸에 게재된 질의응답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월별 자료를 보면, 2025년 11월 중 입직자는 전년동월대비 3만 7천 명, 이직자는 5만 7천 명 감소했고, 입직률은 4.5%(-0.2%p), 이직률은 4.4%(-0.3%p)로 각각 하락했다. 12월에도 입직자 3만 3천 명, 이직자 2만 5천 명이 줄면서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직 사유를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나눠 보면 더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2024년 여러 달에 걸쳐 자발적 이직(근로자 스스로 퇴직한 경우)이 전년동월대비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예: 2024년 4월 -2.8%, 7월 -5.4%, 8월 -0.5%, 10월 -1.7%). 반면 비자발적 이직(고용계약 종료, 구조조정 등)은 같은 기간 상대적으로 덜 줄거나 오히려 늘어난 달도 있었다.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줄고, 회사 사정으로 떠나게 되는 사람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유지되거나 늘어난 셈이다.
기업의 구인 사정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인력부족률은 2024년 10월 2.8%에서 2025년 4월 2.5%, 2025년 10월 2.4%로 계속 낮아졌다. 채용 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고, 이는 “이직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심리와도 맞물릴 수 있다.
“2030 이직 열풍”이라는 말과 어긋나는 근속연수
체감과 어긋나는 숫자도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집계해 2025년 4월 CBC뉴스(국내 매체)가 보도한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최근 5년간 근속연수를 공시한 80곳의 평균 근속연수는 14.03년으로, 2020년(13.55년) 대비 0.48년 늘었다. 연도별로는 2020년 13.55년 → 2021년 13.70년 → 2022년 13.63년 → 2023년 13.91년 → 2024년 14.03년으로 완만하지만 꾸준한 증가세였다. 특히 여성 직원의 근속연수가 2020년 11.38년에서 2024년 12.94년으로 1.56년 늘어, 남성(14.29년→14.41년, 0.12년 증가)보다 훨씬 가파르게 늘면서 근속연수의 성별 격차도 줄었다. 보도는 이를 두고 “2030세대의 활발한 이직 열풍”에도 불구하고 나온 결과라고 짚었다. 젊은 세대의 이직이 잦다는 이야기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것과 별개로, 적어도 대기업 단위의 평균 근속연수는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한 달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고용노동통계 홈페이지가 실시간으로 갱신하는 최신 지표(2026년 5월 기준)를 보면, 입직률과 이직률이 모두 4.9%로 전년동월대비 각각 0.5%p, 0.6%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살펴본 2025년 하반기의 지속적인 하락 흐름과는 다른 방향이다. 노동 이동 지표는 원래 월별 변동이 크고, 계절적 요인(정기 채용 시즌, 회계연도 전환 등)의 영향도 받는다. 그러니 이 최신 수치 하나만으로 “얼어붙었던 이직 시장이 다시 풀리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2025년 하반기 내내 이어졌던 동반 감소 흐름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멈췄거나 방향을 바꿨을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한국의 “잡 허깅”은 미국과 같은 이야기일까
미국의 잡 허깅 논의는 주로 “AI로 인한 고용 불안”과 “채용 시장 냉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국의 이직·구인 지표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원인까지 같다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한국은 제조업·건설업의 장기 경기 부진(고용노동부 자료 기준 제조업 26개월, 건설업 18개월 연속 종사자 감소)이라는 산업 구조적 요인이 크게 얽혀 있고, 이는 미국의 상황과는 결이 다르다. “이직하지 않는다”는 현상은 비슷해 보여도, 그 현상을 만드는 압력의 성격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몇 가지는 밝혀야 한다. 이 글에서 인용한 수치는 모두 고용노동부가 「사업체노동력조사」·「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매달 발표하는 정책브리핑 원문(대한민국 정책브리핑, korea.kr)과 고용노동통계조사 홈페이지(laborstat.moel.go.kr)에서 직접 확인했다. 다만 애초 계획했던 한국노동패널(KLIPS) 원자료를 이용한 개인 수준의 이직 사유·근속연수 분석은, 이번 리서치에서 원자료 직접 분석까지는 진행하지 못했고 이를 활용한 국내 학술논문 몇 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참고했다. 정밀한 개인 단위 분석(예: 이직 전후 직무만족도 변화, 산업·직군별 근속연수 차이)이 필요하다면 별도 리서치가 필요하다.
또한 사업체노동력조사의 입·이직률은 월별 변동이 크고, 300인 미만/300인 이상 사업체 사이의 흐름이 다르게 움직이는 달도 많다. 이 글에서는 전체 흐름 위주로 정리했지만, 특정 산업이나 기업 규모로 좁혀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밝혔듯 가장 최근 달(2026년 5월)의 지표는 그 이전까지의 하락 추세와 반대 방향이었다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 이 글의 제목은 2025년 하반기까지의 흐름을 가리키며, 그 이후 상황은 계속 지켜봐야 한다.
이력서를 다시 열어본다. 이직을 미룬 게 순전히 내 우유부단함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는 조금 든다. 다만 이 반등이 계속될지는 아직 알 수 없어서, 그 판단까지 미룰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각 월호 보도자료 (2024.4. ~ 2026.5.).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및 고용노동통계조사 홈페이지(laborstat.moel.go.kr).
고용노동부.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 2024년 10월·2025년 4월·2025년 10월 조사 결과. e-나라지표(index.go.kr).
CBC뉴스 (2025.4.16.). “2030세대 이직 열풍에도 대기업 평균 근속연수 증가, 평균 근속연수 14.03년으로.” [원자료: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 집계]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Job Openings and Labor Turnover Survey (JOLTS), 2025년 6월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