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는 데도 비용이 든다

 

두 달을 혼자 붙잡고 있었다

입사 2년 차였을 때, 두 달 가까이 붙잡고 있던 보고서가 있었다. 방향을 잡고 자료를 모으는 단계부터 뭔가 애매하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섰다. 팀장 방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다. 괜히 물어봤다가 “이런 것까지 확인해야 하나”라는 표정을 볼까 봐, 혹은 두 달째 붙잡고 있으면서 아직도 방향을 못 잡았다는 게 드러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마감 전날에야 초안을 들고 갔다. 팀장은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두 달 전에 방향을 한번 확인했으면 좋았을 텐데.” 완전히 틀린 방향은 아니었지만, 절반은 다시 써야 했다. 그날 깨달은 건 단순했다. 그 두 달 동안 나에게 부족했던 건 능력이 아니라, 질문 한 번이었다.

돌아보면 이상한 일이다. 회사에는 분명히 피드백을 줄 사람이 있었다. 팀장도, 선배도, 옆자리 동료도 물어보면 답해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두 달 동안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피드백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 모니터 앞에서 고민하는 직장인
두 달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피드백 추구 행동(feedback-seeking behavior)’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연구해 왔다. 이 분야의 출발점이 된 논문은 애쉬포드와 커밍스(Ashford & Cummings, 1983)의 연구인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 이론이 “피드백을 어떻게 잘 줄 것인가”가 아니라 처음부터 “사람들은 왜 스스로 피드백을 구하지 않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이 피드백을 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모니터링’으로, 직접 묻지 않고 주변 반응이나 분위기를 관찰해서 스스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문의’로, 상대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의는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인데도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직접 물어보는 순간, 자신이 확신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걸 상대에게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애쉬포드와 커밍스는 이걸 ‘비용’과 ‘가치’의 저울질이라고 설명한다. 피드백을 구했을 때 얻는 정보의 가치가 크더라도, 그걸 구하는 과정에서 드는 심리적 비용—무능해 보일 위험, 어색해질 위험, 상대를 귀찮게 한다는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면 사람들은 묻지 않는 쪽을 택한다. 내가 두 달 동안 팀장 방 앞에서 돌아섰던 이유도 정확히 이거였다. 정보의 가치보다 “이런 것도 모르냐”는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애쉬포드와 커밍스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예측했다. 오래 근무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피드백을 덜 구할 거라는 것이다. 신입 때는 몰라서 묻는 게 자연스럽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봤다. 다만 이건 1983년 논문이 실증 데이터로 보여준 결과가 아니라, 비용-가치 모델에서 논리적으로 도출한 예측이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 논문 자체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 모델 논문에 가깝다. 이 예측이 실제로 맞는지는 30년 넘게 지난 뒤에야 확인된다.

묻는 대신 눈치껏 판단하는 쪽을 택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할 모호성에서 다룬 사례가 정확히 보여준다. 상사가 “전체적으로 잘 정리해서 보여달라”는 말만 남기고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았을 때, 그 글의 화자는 되묻는 대신 생각나는 자료를 전부 끌어모아 야근까지 했다. 물어봤다면 몇 분이면 됐을 일을, 묻지 않아서 몇 시간짜리 헛수고로 만든 셈이다.

30년 치 연구를 종합하면 보이는 것들

앤셀 외 연구진(Anseel, Beatty, Shen, Lievens, & Sackett, 2015)은 애쉬포드와 커밍스 이후 30년간 쌓인 관련 연구들을 메타분석으로 종합했다. Journal of Management 41권 1호(318-348쪽)에 실린 논문 원문을 직접 확인했다. 어떤 사람이 피드백을 더 적극적으로 구하는지, 그 요인들을 정량적으로 정리한 연구다.

먼저, 애쉬포드와 커밍스가 30년 전 이론적으로만 예측해뒀던 근속연수 효과는 이 메타분석에서 실제로 확인됐다. 조직 내 근속연수(ρ = –.19, 11개 연구 종합), 해당 직무 근무기간(ρ = –.15, 13개 연구), 나이(ρ = –.13, 13개 연구) 모두 피드백 추구 행동과 약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상관계수 자체는 크지 않지만 방향은 예측과 일치했고, 통계적으로도 뒷받침됐다.

피드백 추구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보는 성향(목표지향성), 평소 긍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받아본 경험, 높은 자존감, 상사의 리더십 스타일, 그리고 상사와의 관계 질이었다. 관계가 좋고 평소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운 사이일수록, 물어보는 데 드는 심리적 비용이 낮아진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메타분석에는 다소 의외의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을 때(불확실성이 클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구할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 종합해 보니 불확실성과 피드백 추구 행동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약한 음의 상관관계(ρ = –.12)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수치는 단 3개 연구를 종합한 결과라 표본이 작고, 신뢰구간도 0을 포함하고 있어 연구진 스스로 이 가설이 “지지되지 않았다”고 정리했다. 확신이 없을수록 더 묻는다는 통념이 이 메타분석에서는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정도로 읽는 게 정확하고, 이 결과 하나로 단정 짓기는 이르다. 다만 방향 자체는, 두 달 동안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점점 더 묻기 어려워졌던 경험과 겹친다.

확신이 서지 않는 표정으로 서류를 보는 직장인
확신이 없다고 더 묻는 건 아니었다

한국 직장인의 숫자로 보면

이 이론이 한국 직장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한 학술 조사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2023년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내 근무평가 시스템 및 피드백 관련 조사’는 그 배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수치를 보여준다.

응답자의 93.6%는 “자유롭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상사나 대표와의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는 응답은 24.1%에 그쳤다. 나머지는 “동료에게 전해 듣는 등 간접적으로 받는다”(34.1%)거나 “결과만 통보받을 뿐 구체적인 피드백이 없다”(33.8%)고 답했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93.6%)과 실제 경험(24.1%) 사이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

이 격차가 왜 생기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응답도 있었다. 응답자의 76.8%는 “한국 사회에서 피드백은 싫은 소리나 지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에 동의했고, 64.6%는 “연령과 직급에 관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요청 행동’을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고 피드백 전반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것이지만, 피드백이 곧 지적이나 갈등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서는 먼저 묻는 행동 자체가 더 큰 심리적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질문이 위협처럼 느껴지는 순간

애쉬포드와 커밍스가 말한 ‘비용’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조직들이 있다. 질문을 했을 때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되는 곳, 혹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곳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질문 하나가 자신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라리 모니터링—눈치껏 분위기를 살피는 쪽—을 택하게 된다. 정확한 정보 대신 불확실한 추측을 안고 일을 계속하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그렇게 한다.

이건 결국 “질문해도 안전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직 안에서 솔직한 질문이나 실수 인정이 처벌이나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들은 비용보다 가치를 더 크게 느끼고 먼저 묻는다. 그 믿음이 없는 조직에서는 아무리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라”고 말해도,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심리적 안전감에서 다뤘던 질문과 정확히 맞닿는 지점이다. 그 글은 “팀원들이 조용한 게 동의여서인지,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느껴서인지”를 관리자 입장에서 물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건 그 질문의 반대편, 실무자 입장이다. 관리자가 아무리 문을 열어뒀다고 말해도, 실무자가 그 문을 실제로 두드리려면 “물어봤다가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라는 계산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두 글은 결국 같은 침묵을 양쪽에서 보고 있는 셈이다.

회의실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드는 직원
질문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먼저다

그때 한 문장이면 됐다

그때 무엇을 다르게 했어야 할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잘하고 있는지 봐주세요”처럼 두루뭉술하게 묻는 것과 “이 자료 중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해야 할지”처럼 구체적으로 묻는 건, 상대에게 요구하는 부담 자체가 다르다는 건 알겠다. 두 달을 혼자 끌어안고 있는 대신, 2주 차에 후자로 한 문장만 물었어도 됐을 일이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이 글에서 다룬 이론은 대부분 해외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국내에도 피드백 추구 행동을 다룬 학위논문과 학술지 논문이 있지만, 대부분 피드백 추구 행동이 직무만족이나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처럼 ‘결과’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한국 직장인이 구체적으로 왜, 어떤 상황에서 묻지 않는가”를 직접 조사한 국내 실증 연구는 찾지 못했다. 이번 글에서 인용한 국내 설문 역시 피드백 전반에 대한 인식 조사이지, 요청 행동 자체를 측정한 조사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이 글은 묻는 사람의 입장만 다뤘다. 막상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오히려 반발하거나 회피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별도로 다룰 만한 주제다.

돌아보면, 그때 팀장 방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섰던 건 게으름도 무능함도 아니었다. 질문 한 번에 드는 심리적 비용을, 그걸 통해 얻을 정보의 가치보다 훨씬 크게 느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그 두 달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때의 나에게는 그 한 번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참고문헌

Ashford, S. J., & Cummings, L. L. (1983). Feedback as an individual resource: Personal strategies of creating information.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Performance, 32(3), 370–398.

Anseel, F., Beatty, A. S., Shen, W., Lievens, F., & Sackett, P. R. (2015). How are we doing after 30 years? A meta-analytic review of the antecedents and outcomes of feedback-seeking behavior. Journal of Management, 41(1), 318–348.

조해람. (2023. 10. 20). 직장인들 “자유로운 피드백, 너무 중요한데…한국에서 잘 될까요”.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310201401001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 ‘2023 직장 내 근무평가 시스템 및 피드백 관련 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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