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도 일을 놓지 못했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일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오늘 못 끝낸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자기 전에 내일 할 일을 한 번 더 되짚었다. 그래야 다음 날 덜 헤매고 더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열심히 생각을 이어간 다음 날일수록 오히려 더 무겁게 하루를 시작했다. 몸은 쉬었는데 머리는 쉬지 못한 느낌이었다. 반대로 어쩌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저녁을 보낸 날은, 다음 날 훨씬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냥 운이 좋은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를 보니, 그 차이가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복은 최대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샬럿캠퍼스의 라이언 그랜트 교수가 오번대학교·조지아대학교 연구자들과 함께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팀은 300여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두 건의 실험을 진행했다. 하나는 잠들기 전까지 매시간 설문에 응답하게 한 실험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 시간을 세밀하게 재구성해 응답받은 실험이다. 두 실험을 합쳐 약 1만 건에 이르는 저녁 시간 기록이 모였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로 “분리(일 생각을 멈추는 것)”, “이완”, “통제감”, “성취감”이라는 네 가지 회복 경험이 저녁 시간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를 추적했다.
결과는 이랬다. 저녁 초반부터 분리·이완·통제감을 높게 유지한 사람일수록 다음 날 에너지가 높고, 업무 목표 달성도도 높고, 피로도는 낮았다. 공동 연구자인 조지아대학교 파델 마타 교수는 이를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 사두는 것”에 비유한다. 일찍 회복에 투자할수록 그 이득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업무량이 많고 스트레스가 컸던 날은 회복 시작 자체가 밤늦게까지 미뤄졌다. 저녁 5시가 훌쩍 지나서도 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밤이 전체의 49%였고, 그런 밤은 다음 날 에너지와 업무 자신감도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심리적으로 분리되는, 가장 이상적인 패턴의 밤은 전체의 24%에 그쳤다. 마타 교수는 이걸 “일단 오늘 밤 처리하고 말지”라는 마음이 오히려 악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 생각이 다음 날까지 이어져 피로한 채로 출근하게 되고, 결국 그날 못다 한 일을 또 집으로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성취감”의 역할이었다. 퇴근 전에 오늘 뭔가를 해냈다는 감각을 얻은 날은, 저녁에 일 생각에서 벗어나는 시점이 더 빨랐다. 운동이나 악기 연습, 목공처럼 퇴근 후 성취감을 주는 활동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다만 이런 활동을 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관찰의 7~8%에 그쳤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구가 “일을 아예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통념대로 뭔가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준비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날 안에 매듭을 짓지 못한 감각(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저녁 내내 생각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반대로 “오늘 할 만큼 했다”는 감각은 뇌가 그 일을 내려놓게 해준다. 붙잡고 있어야 유능해 보인다는 믿음과 실제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사이에는 이런 간극이 있었다.

잘 놓는 것도 결국 준비가 필요하다
몇 가지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이 연구는 미국 직장인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경험표집 연구라, 한국의 회식·야근 문화나 위계적인 연락 관행까지 그대로 적용하기는 조심스럽다. 또한 자기보고 방식의 설문이라, 매시간 응답이라는 촘촘한 설계로 오차를 줄이려 했다고 해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저녁 시간의 회복 수준과 다음 날 결과를 시간 순서대로 측정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그런 것 같다”는 인상보다는 근거가 탄탄한 편이다. 원 논문은 페이월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공동 연구자가 각각 소속된 두 대학(UNC 샬럿, UGA)이 따로 낸 보도자료를 대조해 수치를 정리했다.
재택근무에서 다뤘던 연구도 결국 비슷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 글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재택근무의 체감을 갈랐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다른 각도에서 비슷한 곳에 닿는다. 출근이라는 물리적 이동 자체가 일종의 전환 의식이었던 셈인데, 재택근무자는 그 의식이 없는 채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랜트 교수는 Fast Company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재택근무자일수록 퇴근 후 의식적으로 노트북을 덮거나 산책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식의 전환 장치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저녁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일을 붙잡고 있어야 다음 날 더 잘 준비될 거라고 믿었던 그 시간이, 사실은 회복을 늦추기만 했던 것 같다. 진짜 필요했던 건 일을 더 오래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날 몫을 해냈다는 감각과 함께 빨리 손을 놓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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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 E. (2026, March 10). ‘What’s your 5 to 9?’ New research published in the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examines how employees recover from work stress. UNC Charlotte, College of Humanities & Earth and Social Sciences. https://chess.charlotte.edu/2026/03/10/whats-your-5-to-9-new-research-published-in-the-journal-of-applied-psychology-examines-how-employees-recover-from-work-stress/
Melancon, M. (2026, May 27). Maximize your 5 to 9 p.m. Terry College of Business, University of Georgia. https://www.terry.uga.edu/after-work-recovery/
Grant, R., Shockley, K. M., Matta, F. K., & Clark, M. A. (2026). What’s your 5 to 9? Antecedents and outcomes of profiles of daily recovery experience trajectories across the evening.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11(7), 861–881. https://psycnet.apa.org/doiLanding?doi=10.1037%2Fapl0001354